18세기로 접어들던 1734년은 유럽과 북미 대륙에서 정치적 격변과 문화적 전환점이 공존하던 해였습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부터 언론의 자유를 다룬 역사적 사건까지, 이 시기의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의 결정적 순간
1734년은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3~1735)의 승패가 갈리던 해였습니다. '강력왕' 아우구스트 2세가 서거한 뒤 폴란드 왕위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자, 프랑스와 스페인은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작센의 아우구스트 3세를 지원했습니다.
1734년 1월 아우구스트 3세가 크라쿠프에서 대관식을 거행했고, 같은 해 6월에는 단치히 공성전이 끝나며 레슈친스키가 폴란드에서 축출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5월의 비톤토 전투와 9월의 구아스탈라 전투에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쟁은 이후 1738년 빈 조약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레슈친스키는 폴란드 왕위 대신 로렌 공작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굴 제국: 황금기의 여운
인도 아대륙에서는 무함마드 샤(재위 1719~1748)가 무굴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통치기는 예술과 건축이 번영한 시기로 기억되지만, 동시에 제국의 실질적 권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흑해를 둘러싼 러시아-튀르크 긴장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오스만 지배 아래 있는 정교회 신자들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고, 이듬해인 1735년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1739)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은 1739년 베오그라드 조약으로 종결되어 러시아가 아조프 지역을 손에 넣었으나, 요새 철거 등 일부 제약이 뒤따랐습니다.
북미: 조지아 식민지의 성장과 언론 자유의 싹
전년도인 1733년 제임스 오글소프가 설립한 조지아 식민지의 중심 도시 서배너는, 유럽에서 온 부채자들과 박해받는 개신교도들의 새로운 안식처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습니다. 1734년에는 원주민 야마크로족 추장 토모치키가 오글소프와 함께 런던을 방문하는 화제의 외교 행사도 열렸습니다.
같은 해 11월, 뉴욕에서는 신문 『뉴욕 위클리 저널』의 발행인 존 피터 젱어가 총독 비방 혐의로 체포되면서 언론의 자유를 묻는 역사적 재판의 막이 올라갔습니다. 이듬해 진행된 이 재판은 비판적 보도의 자유를 확립한 미국 언론사의 이정표로 평가받습니다.
문화와 지식의 변화
프랑스에서는 볼테르가 『철학 서간집(Lettres philosophiques)』을 출간했다가 파리 고등법원의 검열로 책이 불태워지는 논란을 일으켰고, 이 사건으로 그는 파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조지 세일이 코란의 최초 권위 있는 영어 번역본을 출간하며 유럽의 이슬람 이해에 기여했습니다.
1734년에 태어나고 떠난 인물들
- 다니엘 분(Daniel Boone, 11월 2일): 미국 개척 시대를 상징하는 프론티어맨
- 프란츠 메스머(Franz Mesmer, 5월 23일): 최면 치료의 기초가 된 '메스메리즘'을 창시한 의사
- 로브 로이 맥그리거(Rob Roy MacGregor, 12월 28일):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산적이자 민중 영웅
이처럼 1734년은 전쟁과 외교의 격변 속에서도 근대적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지식의 확산이 싹트던, 의미심장한 한 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