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고대 이집트를 하나의 단일한 시대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집트 문명은 3,0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황금 마스크로 유명한 투탕카멘 왕은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시대에 살았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투탕카멘은 피라미드 시대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세워지던 시기와는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투탕카멘 왕의 시대: 신왕국
투탕카멘 왕은 기원전 1332년경부터 1323년경까지 통치한 제18왕조의 파라오로, 이집트 신왕국 시대(기원전 약 1550년~1070년)에 재위했습니다. 신왕국은 이집트가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 투트모세 3세, 람세스 2세 등 위대한 파라오들이 활약한 때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왕국 시대에는 파라오들이 피라미드 대신 룩소르 인근의 '왕들의 계곡'에 있는 암벽 무덤에 안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투탕카멘 역시 이곳의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그의 무덤은 거의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기자의 대피라미드: 구왕국 시대의 걸작
반면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포함한 기자의 유명한 피라미드들은 구왕국 시대(기원전 약 2686년~2181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투탕카멘이 즉위하기 약 1,200년 이상 전의 일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투탕카멘에게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우리에게 아주 먼 옛날의 유적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던 셈입니다.
그럼 피라미드는 계속 지어졌을까?
구왕국 이후 중왕국 시대까지 소규모 피라미드 건축은 일부 이어졌지만, 규모와 정교함 면에서 기자의 대피라미드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장례 방식은 피라미드에서 암벽 무덤으로 완전히 전환되었고, 이것이 바로 투탕카멘의 무덤이 피라미드가 아닌 왕들의 계곡에 위치한 이유입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투탕카멘 왕은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건설되던 구왕국 시대에는 살지 않았으며, 두 시기 사이에는 약 1,000년이 넘는 격차가 있습니다. 다만 '피라미드는 모든 이집트 왕의 무덤'이라는 흔한 오해와 달리, 투탕카멘은 피라미드가 아닌 왕들의 계곡 무덤에 잠들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긴 역사 속에서 각 시대의 문화와 장례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하면, 이 문명을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