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1670년대를 뉴잉글랜드 청교도(Puritan) 세력의 전성기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이 시기에 청교도의 영향력은 증가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들이 청교도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던 걸까요?
창세 세대의 은퇴와 후손들의 변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를 건설한 초창기 청교도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열정과 엄격한 규율로 새로운 '성스러운 공동체'를 세웠던 그들과 달리, 자녀와 손자 세대는 부모님이 확립한 엄격한 종교·사회 질서를 지키는 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식민지 출생 2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박해와 순례의 경험 없이 성장했기 때문에, 종교적 금욕주의보다는 경제적 기회와 개인적 자유에 더 끌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는 청교도 공동체의 결속력을 서서히 약화시켰습니다.
본국 영국 정부의 압박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했습니다. 잉글랜드 본국 정부는 점차 청교도주의에 적대적인 태도로 돌아섰습니다. 왕정복고 이후 영국은 식민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했고, 뉴잉글랜드의 자율적인 청교도 통치 방식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지도자들은 기존의 강경한 정책을 완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관용이 넓어지고, 선거권과 교회 회원 자격 요건도 점차 유연해지면서, 청교도 특유의 엄격한 통치 체계는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쇠퇴의 서곡이 된 10년
결국 1670년대는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 권력이 서서히 잠식되던 시기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창세 세대의 부재와 후손들의 세속화가, 외부적으로는 영국 정부의 간섭이 맞물리며 청교도 사회의 기반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필립왕 전쟁(1675~1676)과 도미니언 오브 뉴잉글랜드(1686) 설립으로 이어지며 뉴잉글랜드 역사의 큰 전환점을 예고하는 서곡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