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침략했을 때, 앵글로색슨인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을까?

흔히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침략했을 때 잉글랜드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 전제는 사실과 다릅니다. 잉글랜드인들은 바이킹의 침략에 실제로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으며, 수많은 전투와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8~10세기, 끊임없는 바이킹의 습격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바이킹은 잉글랜드 해안가를 따라 수차례에 걸쳐 약탈과 정착 시도를 반복했습니다. 특히 793년 린디스판 수도원 약탈 이후 바이킹의 위협은 본격화되었고, 9세기에는 단순한 약탈을 넘어 영토 점령까지 노리는 대규모 침공이 이어졌습니다.

알프레드 대왕과 웨식스의 저항

이러한 위기 속에서 여러 앵글로색슨 지배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펼쳤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웨식스의 알프레드 대왕(King Alfred the Great)입니다. 그는 878년 에딩턴 전투에서 바이킹 대군을 격파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바이킹 지도자 구스룸과 화약을 맺어 잉글랜드 남부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알프레드 대왕은 요새화된 도시인 버(burh)를 건설하고 해군력을 강화하는 등 장기적인 국방 체계를 마련했으며, 이러한 개혁은 후대 통치자들에게도 계승되었습니다.

저항의 결과와 역사적 의미

물론 바이킹의 일부는 잉글랜드 동북부에 '데인로(Danelaw)'라 불리는 지배 구역을 세우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잉글랜드인들이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치열한 전쟁 끝에 형성된 균형점이었습니다. 이후 에드워드 장로왕과 애설스탠 등 웨식스 왕조의 지도자들은 데인로 지역을 탈환하며 잉글랜드 통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잉글랜드인들은 바이킹 침략에 대해 소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백 년에 걸친 저항과 전략적 대응을 통해 나라를 지켜냈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 잉글랜드의 뿌리가 되는 통일 왕국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