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후반, 터키 정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수력 사업을 승인했습니다. 남부 사막을 새로운 관개 지역으로 바꾸기 위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무려 22개의 댐을 건설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해당 지역의 농업과 축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정작 그 땅에 깃든 풍부한 역사적 유산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습니다. 선사 시대부터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문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고학 유적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수백 곳의 유적이 20세기의 댐 물 밑으로 잠겨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도 덧붙여야 할 참사였습니다.
비레지크(Birecik) 댐을 배경으로 한 제우그마 언덕 발굴 현장
제우그마를 찾으려면 터키 가지안테프(Gaziantep) 주, 특히 시리아 국경에서 약 20km 떨어진 벨키스(Belkıs) 마을로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20세기 말의 홍수 이후에도 남아 있는 제우그마의 로마 유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로마 모자이크가 가장 잘 보존된 장소 중 하나이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종류의 모자이크를 다루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우그마, 간추린 도시의 역사
유프라테스 강변에 세워진 이 도시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 장군 출신, 즉 셀레우코스 제국의 건국자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입지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유프라테스 강의 핵심 도하 지점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시의 진정한 전성기는 로마의 정복과 함께 열렸습니다. 기원전 64년 폼페이우스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도시 이름은 '제우그마'로 바뀌었고, 이후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합니다. 파르티아와의 전쟁을 계기로 로마군 스키타이 제4군단(Legio IV Scythica)이 파르티아 원정의 최전선 거점으로서 이곳에 주둔하게 되면서 도시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 첫 번째 성과 중 하나가 유프라테스 강을 가로지르는 정식 교량의 건설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배를 엮은 뗏목 다리로만 강을 건널 수 있었는데, 새 다리가 놓이면서 제우그마는 당시 지중해의 주요 항구였던 안티오키아와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의 결정적 요충지로 부상합니다. 이러한 번영에 힘입어 부유한 상인과 사업가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주지사와 군인들을 제치고 누가 더 화려한 빌라와 멋진 목욕탕, 인상적인 모자이크를 갖추었는지 경쟁했습니다.
전성기의 제우그마 인구는 약 8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서기 256년,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에게 도시가 함락되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이후 수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의 통치를 받았지만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고, 마침내 중세 성기 아랍 세력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잊혀져 갔습니다.
20세기, 다시 빛을 본 고대 도시
제우그마 보물은 대략 1960년대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지만, 터키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없어 유적지는 오랫동안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현지 담당자들의 말에 따르면, '동부 지중해' 산출물로 소개되며 세계 절반의 박물관을 장식한다는 상당수 모자이크가 실은 제우그마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체계적인 발굴 작업은 1980년대 말 시작되었으며, 그 후로도 캠페인이 이어지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모자이크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비레지크 댐 건설로 유적지가 침수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장의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2014년의 제우그마 발굴 현장
1995년 프랑스 고고학자 피에르 르리셰(Pierre Leriche)와 카트린 아바디 르날(Catherine Abadie-Reynal)은 물속에 가라앉게 될 로마의 보석들을 세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구조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이후 몇 해는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전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최대한 많은 유물과 모자이크를 구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2000년 여름, 여러 차례의 발굴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제우그마의 대부분은 물에 잠겼습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도시가 자리했던 도시의 저지대 전체가 침수되었고, 언덕 지역 면적의 30% 이상을 포함해 방대한 유산이 그대로 수중에 남겨졌습니다.
그럼에도 발굴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2007년에 시작된 캠페인은 2014년, 그리스 신화의 아홉 뮤즈(9명의 여신)를 묘사한 화려한 모자이크를 발굴하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세계 최대의 모자이크 박물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외관
터키 당국이 이 모든 일에 방관하지만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값진 결과물은 있습니다. 2011년 9월 9일,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이 개관한 것입니다. 부지면적 40,000㎡에 전시 면적만 7,000㎡에 달하는 이 박물관은 같은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입장료는 3유로 조금 넘는 수준이며, 하절기(여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동절기(겨울)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 운영됩니다.
박물관에는 제우그마 고고학 캠페인에서 나온 유물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로마식 분수, 프레스코화, 조각상, 비석, 화성(마르스) 신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진정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2,000㎡가 넘는 다양한 모자이크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20세기 말 세계를 매혹시킨 두 초상. 위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1984년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 촬영한 '아프간 소녀', 아래는 제우그마 초기 발굴 캠페인에서 출토되어 '집시 소녀'라 불리는 모자이크입니다. 상징성과 눈부신 유사성을 지닌 두 이미지.
로마 세계에서 농업과 연극의 신 바쿠스로 알려진 디오니소스의 승리를 그린 모자이크.
그리스 신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유로파의 납치'.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공주 에우로파를 데려가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삼지창을 들고 물고기와 신화 속 생물들—반은 인간, 반은 뱀인 존재들—에 둘러싸인 포세이돈 모자이크.
위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의 극히 일부입니다. 하지만 유프라테스 강물 아래에 잠든 이 거대한 고고학 보물의 가치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추가 정보: bbc zeugmamosaicmuseum
이미지 출처: commons.wiki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