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와 기후학자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이 빙하 코어(ice core) 분석만으로 놀랍도록 정밀한 역사적 증거를 복원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서양 역사에서 가장 격변의 시기였던 540년부터 660년 사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의 '역병에 시달리는 블레셋 사람들'. 지중해 분지에서 541년부터 767년까지 휩쓴 유스티니안 역병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서기 536년, 과연 끔찍한 해였을까요? 학술지 Antiquity에 발표되어 미국 과학 저널 Science에서도 주목한 연구에 따르면, 이 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하버드대 고고학자 마이클 매코믹(Michael McCormick)은 "인류가 살아온 시기 중 손꼽히게 험난한 시기의 시작이었으며, 역사상 최악의 해가 아니라 해도 가장 최악에 가까운 해였다"고 말했습니다.
원인은 기후 재앙, 즉 한 차례 이상의 대규모 화산 폭발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산 물질이 대기를 뒤덮으며 햇빛을 가리고, 지구 기온이 무려 1.5~2.5℃나 하락한 것입니다. 당시 문헌에도 이러한 현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나무 나이테를 연구하는 연륜연대학에 기반한 기존 연구 결과와도 정확히 부합합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농작물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사회 전반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어 541년에는 첫 번째 페스트 대유행인 '유스티니안 역병'이 창궐하며 지중해권에 결정타를 안겼습니다.
빙하 코어 속 납 동위원소가 말해주는 과거의 경제
연구진은 스위스 빙하에서 채취한 빙하 코어에 포함된 납 동위원소를 분석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샘플은 약 2000년간의 대기 변천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납일까요? 비결은 은 화폐에 있습니다. 대기 중 납 오염은 은 광산 채굴과 제련 활동, 곧 은화 주조 산업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얼음 샘플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팀은 두께 120마이크론의 얇은 얼음 시편을 절단할 수 있는 레이저를 활용했습니다. 덕분에 며칠 단위의 정밀도로 역사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러브러크(Christopher Loveluck)는 "환경 기록이 역사 문헌만큼 정밀해진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것은 한 차례 혁명"이라며 연구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600년~670년 사이 납·비스무트·황 농도의 변화 / Loveluck et al.
광산 채굴 활동의 흔적. 당시에는 주로 갈레나(galena, 방연광) 광맥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광물에는 은이 미량 포함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황화납이 다량 들어 있습니다. 연구진은 공기 덩어리의 이동 경로를 모델링하여 무역에 쓰인 은화가 어느 지역에서 제련되었는지 추적했고, 이를 통해 유럽의 경제 활동 수준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기후 변동이나 전염병 같은 역사적 대사건들과 교차 검증까지 가능해졌습니다.
대기 중 납 농도가 상승하는 시기는 경제가 활발했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러브러크는 "이는 금화에서 은화로의 전환, 그리고 최초의 상인 계층의 부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대로 납 농도가 급락하는 시기는 경제가 붕괴한 시기와 일치하는데, 유스티니안 역병이나 1349~1353년의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바로 그 원인이었습니다.
얼음 속에서 발견된 화산 유리질 입자
그렇다면 유럽 기후 재앙을 일으킨 화산 폭발은 정확히 어디에서 일어난 것일까요? 기존 연구 중 일부는 열대 지방의 화산을, 또 다른 연구는 북아메리카의 화산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팀은 아이슬란드 화산의 폭발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빙하 코어에서 특징적인 화산 유리질 미세 입자가 발견되었고, 그린란드는 물론 유럽 여러 호수와 습지 퇴적물에서도 동일한 입자가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연구진은 향후 추가 화산 샘플을 확보해 이 가설을 더욱 확실히 검증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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