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연구팀이 예루살렘 지하에서 발견된 포장도로의 건설 연대를 정확히 규명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거리는 서기 30년 무렵, 즉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를 통치하던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 안쪽에 펼쳐진 성전산(Temple Mount) 전경.
지난 약 50년간 예루살렘에서는 초기 로마 통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러 거리가 발굴되어 왔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당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다윗의 도시(City of David)' 성벽 안쪽에서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이곳은 기원전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이 남아 있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수많은 기념물과 예배 공간이 모여 있는 역사의 보고(寶庫)입니다.
그중에는 유대교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꼽히는 성전산도 있습니다. 성전산은 바로 유명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던 자리입니다. 서기 70년 티투스 황제에 의해 파괴된 이 성전은 현재 서쪽 외벽 일부만 남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오늘날에도 매일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이 벽 아래에 모여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헤로데 대왕이 재건한 성전이 온전히 남아 있던 2000여 년 전, 이미 신앙인들이 이곳으로 운집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가 바로 텔아비브 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입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2019년 10월 20일 학술지 '텔아비브 고고학 연구소 저널(Journal of the Tel Aviv Institute of Archeology)'에 게재되었습니다.

© DRAWING: D. LEVI, LPN; PRINTED BY PERMISSION OF THE SURVEY OF ISRAEL
600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순례길
연구팀이 발굴한 거리는 길이 600미터, 폭 약 8미터에 달합니다. 이 거리는 서기 1세기 예루살렘의 두 핵심 명소를 잇던 통로였습니다. 한쪽 끝은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선천적으로 눈이 먼 사람을 고친 곳으로 알려진 물 저장 시설, 실로암 연못(Siloam Pool)이며, 다른 쪽 끝은 성전산입니다.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웅장한 순례길은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 기간, 즉 서기 26년부터 37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빌라도는 유대 귀족들의 압박 속에 예수를 체포하고 처형하라고 판결을 내린 로마 총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당시 총독으로서 불안정하고 격동적이었던 유대라는 새 속주에서 11년이라는 재임 기간은 이례적인 장수였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적 시간의 축에서 11년은 종종 붙잡기 어려운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경우 연구진은 화폐학을 통해 이 시기를 정확히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석 아래에서 발견된 100여 개의 동전이 이 화려한 거리의 건설 연대를 좁혀 준 것입니다.

© M. Hagbi, LPN
31년 이전에 주조된 동전, 결정적 단서
발견된 동전들은 모두 서기 17년부터 31년 사이에 주조된 것들입니다. 이는 거리의 포장 작업이 반드시 서기 31년 이전, 다시 말해 빌라도 통치기에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동전 연대 측정법은 매우 정확합니다." 텔아비브 대학교의 고고학자이자 화폐학 전문가인 도널드 T. 아리엘(Donald T. Ariel) 박사가 설명합니다. "일부 동전에는 주조 연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30년'이라고 표기된 동전이 거리 아래에서 나왔다면, 그 거리는 같은 해 또는 그 이후에 건설되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리의 건설 시기가 서기 30년보다 한참 뒤일 가능성은 어떻게 배제할 수 있을까요? "통계적으로 보면 주조된 지 약 10년 정도 지난 동전이 예루살렘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됩니다. 거리 아래에서 이런 동전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동전들이 유통되기 전에 거리가 건설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빌라도 시대 이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리엘 박사는 덧붙였습니다.

© Nahshon Szanton, Journal of the Tel Aviv Institute of Archeology
연구진은 이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채석장에서 약 1만 톤의 석회암을 떼어내 운반해야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공사가 진행된 만큼, 이 거리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순례객을 위한 대로(大路)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거리의 방대한 크기 역시 이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만약 단순히 A지점과 B지점을 잇는 작은 보행로였다면, 굳이 이토록 넓게 지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고대유물청(IAA) 소속 고고학자이자 공동 저자인 조 우지엘(Joe Uziel) 박사와 모란 하그비(Moran Hagbi)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실제로 이 거리가 본디오 빌라도 시대의 것이라면, 이론상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 길을 걸었을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여러 차례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