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트(Ziggurat)는 기원전 2100년부터 기원전 600년 사이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들이 세운 웅장한 계단식 건축물입니다.

이란 남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초가잔빌(Tchogha Zanbil) 지구라트는 기원전 1300년경에 지어졌으며, 이러한 유형의 건축물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사례로 꼽힙니다.
"중앙에는 한 스타디온(stadion) 길이와 폭을 지닌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고, 그 위에는 또 다른 탑이, 다시 그 위에는 세 번째 탑이 놓여 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가 남긴 이 기록은 지구라트에 관한 최초의 서술 중 하나로, 당시 바빌론의 지구라트를 묘사한 것이며 오늘날 '바벨탑' 신화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통치자들이 기원전 2100년에서 600년 사이에 세운 이 장대한 건축물들은 모두 동일한 원리를 따릅니다. 즉, 서로 뒤로 물러나며 위로 쌓아 올린 널찍한 테라스 구조입니다. 오늘날 이라크에 위치한 우르(Ur)나 우루크(Uruk)의 지구라트처럼 일부 건축물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높이 70미터에 달하는 거대 구조물
계단이 없는 지구라트의 경우 전문가들은 인접한 건물 꼭대기를 통해 정상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건물 전체는 높이 70미터에 이를 만큼 방대했습니다.
건축물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육중한 몸체는 수백만 개에 달하는 햇볕에 말린 흙벽돌(생벽돌)을 평벽돌과 엣지 벽돌을 번갈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모르타르 역할을 한 아스팔트(천연 역청)는 방수 기능을 담당했으며, 빗물은 배수구 시스템을 통해 배출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지구라트의 건축 기술은 여타 혁신과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내부의 습기를 제거해 몸체를 건조하게 유지하는 환기 덕트, 그리고 전체를 풍화로부터 보호하는 가마에 구운 벽돌 외피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우루크에서는 갈대로 엮은 매트를 벽돌 층 사이에 끼워 넣고 석재에 앵커를 매립해 건물의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지구라트는 거대한 종교 단지의 일부였다"
프랑수아 데세(François Desset, CNRS/테헤란대학교) 고고학자는 "지구라트는 거대한 종교 단지의 일부를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지구라트 꼭대기에는 분명 사원이 세워져 있었겠지만, 어느 곳도 충분히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아 이를 단언하거나 나아가 그곳에서 치러졌던 의식의 실체를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글: 실비 그루조(Sylvie Gruszow)
본 기사는 2019년 7~8월 호 Sciences et Avenir(과학과 미래) 특별판 '건축가들의 과학'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