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룩소르 인근의 데르엘메디나(Deir el-Medina)는 왕실 무덤을 건설하던 장인들과 그 가족들이 살았던 특별한 정착지였다. 고고학자들은 이곳 유적을 통해 주민들의 일상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복원해냈으며, 심지어 작업이 멈추게 된 이유까지 밝혀내었다.
![[인터뷰] 왕가의 무덤을 만든 이집트 장인들, 그들에게 일은 신성한 사명이었다!](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16050561.jpg)
▲ 이집트 장인 마을 데르엘메디나의 주택 벽 모습. (사진=Sciences et Avenir)
본 기사는 2019년 4~5월호 사이앙스 에 아브니르(Siences et Avenir) 특별판 제197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왕가 무덤의 장인들,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길레메트 앙드뢰라노에(Guillemette Andreu-Lanoë)는 이집트학자이자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고대미술부 명예 관장이다. 그녀에게 데르엘메디나의 비밀을 물었다.
Q. 고고학자들이 무덤 공사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의 마을을 발굴했습니다...
데르엘메디나는 엄밀히 말해 마을이라기보다는 캠프에 가까웠다. 물이 솟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신왕국 시대에 '무덤 재단(Institution de la Tombe)'이 조성한 곳으로, 이 기관은 파라오 직속으로 왕실 가문의 무덤 건설을 총괄하며 장인들을 지휘했다. 물, 식량, 아마포 등 필요한 물자는 모두 현장으로 배급되었다.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까지 도보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이 완전히 인공적인 정착지는 신왕국 말기에 왕실 네크로폴리스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버려졌다.
Q. 이 마을은 어떻게 발전했습니까?
최초의 연대를 알려주는 흔적은 초기 외벽 벽돌에 새겨진 카투슈로, 투트모세 1세(재위 기원전 1504~1492년경)의 이름이 적혀 있다. 즉, 팀 전체를 아마르나로 옮겼던 아케나텐 '사건'보다도 훨씬 이전의 것이다. 마을 주변에서는 열두 개 정도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그중에는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시대에 현장 감독관을 지낸 카(Khâ)의 화려한 무덤이 있다. 무덤의 풍요로움은 당시 그의 위상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데르엘메디나는 람세스 시대에 두 차례 확장을 겪었다. 덕분에 이 시기는 유적에서 출토된 수많은 오스트라카(ostraca, 도기 파편 기록) 덕분에 잘 기록된 시대로, 공동체의 일상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람세스 4세(기원전 1153~1147년경)부터 이집트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통치 기간은 짧아지고 파라오의 권위는 줄어드는데, 역설적으로 무덤만은 갈수록 거대해졌다. 완전한 장례식 메갈로매니아에 젖어든 시기였던 셈이다!
Q. 이 장인들은 누구였습니까?
파피루스가 보여주듯 이곳에는 여러 직능 조직이 있었다. 채석공(무덤을 파내는 사람), 미장이(벽면을 준비하는 사람), 화가, 조각가, 서기관 등이 그들이다. 한편 장례 용품은 외부 작업장에서 따로 제작되었다. 장인들에게 데르엘메디나에서 일하는 것은 성직에 임명되는 것과 같은 축성(consecration)이었으며, 이는 이들에게 이집트 사회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실제 직무와는 무관한 칭호도 함께 주어졌는데, 바로 "셋마아트(Set-Maât)의 자리에 불리는 소리를 듣는 자"였다. 그들은 사제는 아니었지만, 신성한 공간과 특별한 연결고리를 유지했다. 셋마아트, 즉 '마아트(질서·정의·진리)의 장소'는 단순히 왕가의 계곡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수백만 년의 성전'과 무덤들, 그리고 마을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복합체였으며, 이곳에서 장인들은 귀족과 같은 보호받는 특권층을 형성했다.
Q. 데르엘메디나에는 몇 명이 살았습니까?
유적 분석 결과 약 60가구가 이곳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호적 조사 기록—집집마다 모든 내용이 기록된 문서—을 통해 그 숫자는 최대 120가구로 상향 조정되었으며, 그중에는 대대로 이어진 진짜 왕조 같은 집안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아이들의 흔적은 많지 않다. 학교가 있었다면 몇 킬로미터 떨어진 라메세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장인들은 자신들의 뒤를 이을 아이들만 곁에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Q. 왕실 무덤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현장에 나가기 전에 장인들은 먼저 케템(khetem)—마을 입구에 위치한 무덤 재단 본부—을 통과해야 했다. 그곳에서 해야 할 작업 내용이 적힌 오스트라카나 파피루스를 받았다. 무덤 안에서는 두 개 팀이 동시에 작업을 진행했다. 왼쪽 팀과 오른쪽 팀이 각자 자신의 벽과 감독관을 두고 맞섰으며, 두 팀 사이에는 은근한 경쟁심도 존재했다. 노동자들은 10일간 일한 뒤 마을로 돌아와 이틀간 휴식을 취했다. 일부 파피루스에는 결근 사유가 기록되어 있는데, 휴가, 부릴 의무, 질병, 생리 중인 아내나 딸, 그리고 심지어는... 숙취까지 등장한다!
글: 앙리 모렐(Henri Mo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