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잊혀진 중세 나환자들의 운명, 프라이부르크에서 발굴된 400구의 유골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세 시대, 치료 불가능한 전염병에 걸린다는 것은 영원한 고립을 의미했습니다. 나병(한센병), 매독, 결핵에 걸린 사람들은 자동으로 세상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프라이부르크 임 브리스가우(Freiburg im Breisgau)의 중세 나환자 수용소 옛 묘지 부지에서 발견된 400구의 유골은 유럽 대륙을 괴롭혔던 전염병들의 실체를 밝혀내고, 오늘날 세계 다른 지역에서 병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들을 더 잘 치료하는 데 소중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잊혀진 중세 나환자들의 운명, 프라이부르크에서 발굴된 400구의 유골이 들려주는 이야기

흑림(슈바르츠발트) 기슭에 자리한 프라이부르크 임 브리스가우의 크로넨슈트라세 21번지에서는 지하 주차장 건설 예정 부지의 출입구 구역을 샅샅이 조사하며 중세 나환자 묘지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 전염병 환자들은 도시 외곽의 수용소에 격리되어 그곳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야 했습니다. 일단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이미 죽은 자의 세계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오랜 세월의 망각을 끝내고자, 구제 발굴 조사는 사회로부터 추방된 이들 환자와 그들이 앓았던 질병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나환자 수용소 묘지에서 발굴된 400구의 유골

2020년 5월, 크로넨슈트라세 21번지에서 지하 주차장 건설을 위한 토목 공사가 진행되던 중 인골 두개골이 발견되면서 작업이 급히 중단되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문화재보호청(LAD)의 고고학자들은 이곳이 중세 시대 나환자 수용소가 있던 자리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런 발견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 서로 다른 두 구역에서 총 400구의 유골이 발굴되었으며, 이는 부지가 사용된 두 시기를 반영합니다. 동서 방향으로 줄지어 정연하게 배치된 가장 오래된 무덤들은 중세 시대의 것으로, 나환자 수용소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해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두 번째 구역에서는 유해들이 뒤엉킨 채 무질서하게 묻혀 있었습니다. 청동 단추와 군복 조각들로 미루어 이들은 군인으로 확인되는데, 고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중이던 1744년 도시 공성전에서 전사한 프랑스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잊혀진 중세 나환자들의 운명, 프라이부르크에서 발굴된 400구의 유골이 들려주는 이야기

비교적 후기 구역에서는 유해들이 묵주와 함께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 Jana Noll, AAB Archäologie / Landesamt für Denkmalpflege im Regierungspräsidium Stuttgart

치료 불가능한 병을 안고 살았던 사람들

1차 인류학 분석 결과, 묻힌 이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그중 90%가 뼈와 턱뼈에서 전염병의 흔적을 드러냈습니다. 전체의 60%는 나병(한센병) 환자였고, 매독, 결핵, 뇌수막염의 징후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아울러 구루병과 영양실조의 흔적도 확인되어, 당시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았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나병은 초기 중세 시대에 유럽에 처음 등장한 Mycobacterium leprae(나병균)가 일으키는 만성 전염병으로, 당시에는 알려진 치료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성매개 세균 감염이 유럽 대륙에서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회수된 유해에 대한 분석이 귀중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매독의 특징적인 골 병변이 나병이 일으키는 병변과 매우 유사해서 두 질병이 쉽게 혼동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매독 환자가 나병 환자로 오인되어 나환자 수용소에 격리되기도 했습니다.

1256년에 묘지가 조성되다

당시 프라이부르크 성문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크로넨슈트라세 나환자 수용소는 문헌에 처음으로 1251년 등장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시설은 1256년 사제와 묘지를 갖추게 되었고, 1268년에는 새로운 예배당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역사 삽화를 통해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환자들을 위한 거주 건물, 물품 보관소, 예배당, 묘지, 그리고 주변 경작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이 나환자 수용소는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2년 12월 29일, 스웨덴 군대에 의해 불태워져 파괴되었습니다.

전체 2,000기가 넘는 무덤으로 추정

건축 평면도가 남아 있지 않아, 고고학자들은 발굴 현장에 어떤 건물이 서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구물리학적 탐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지표 아래 50cm~1.6m 깊이에서 묘지와 예배당으로 추정되는 건물 기초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흥미롭게도 발굴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원래 면적의 10%에 불과합니다. 묘지의 나머지 부분은 19세기 말 이후 아파트 건물 아래에 묻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슈투트가르트 LAD의 고고학자 베르트람 예니슈(Bertram Jenisch)는 376년간의 사용 기간을 고려할 때 약 2,000기의 무덤이 이곳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또한 발굴된 구역에서는 남성의 유해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 수용소에서 일반적이던 남녀 분리 관행이 묘지 조성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잊혀진 중세 나환자들의 운명, 프라이부르크에서 발굴된 400구의 유골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장 오래된 구역의 무덤들은 정연하게 줄지어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 Jana Noll, AAB Archeology / LAD Stuttgart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사람으로 여겨지다

전염병 환자를 위한 격리 시설, 즉 나병 수용소나 페스트 환자를 위한 라차레토(lazaretto)는 도시 성문 근처, 최대 10km 이내 거리에 건설되었습니다. 환자들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과 상관없이 사실상 모든 권리를 잃었고, 종교적 성사를 마친 뒤에야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그들이 이미 죽은 사람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입소 후 그들은 주로 기부와 구걸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들을 '착한 사람들(Gutleut)'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하늘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수용소(Gutleuthäuser)들이 왕래가 많은 시골길변에 위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프라이부르크 남쪽의 길은 바젤로 통하는 간선 도로였습니다.

베르트람 예니슈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남서부에 해당하는 브리스가우(Brisgau) 지역 최대 도시였던 프라이부르크에는 1500년경 최소 3개의 나환자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바젤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곳이 가장 오래되었고, 나머지는 도시 북쪽에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병이 '나쁜 공기'를 통해 퍼질 수 있다고 여겨졌던 위치 선정 원칙에 따른 것으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폭넓게 탐사된 나환자 묘지

독일에서는 이미 많은 나환자 묘지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프라이부르크 유적지가 유일한 사례는 아니지만, 뛰어난 고고학적 가치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공기로부터 차단되어 토양이 특히 잘 보존되어 있어, 이곳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폭넓게 탐사된 나환자 묘지이자 가장 유용한 연구 대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잊혀진 유해들을 통해 나병의 증상을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묻힌 이들의 사망 당시 나이와 사망 원인까지 규명할 수 있습니다. 뼈에 대한 분석은 콘스탄츠에서 진행되며, 슈투트가르트 LAD는 관의 못, 부적, 묵주 조각 등 고인과 함께 발견된 유물들을 검토할 예정입니다.

한센병 치료 연구에 남길 중요한 정보

보존된 유골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 고고학자들은 위장 부위의 토양 샘플도 함께 채취했습니다. 장내 세균의 잔여물을 분석해 질병의 흔적을 찾아내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여러 국제 연구 기관들이 이미 이번 분석 결과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나환자 무덤에 대한 연구는 한센병 치료법 개발에 풍부한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질병은 약 300년 전 독일에서 사라졌지만, 오늘날 항생제와 화학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특히 남반구의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중세의 비극이 남긴 유골들이 미래의 치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의미 깊은 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