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반항하는 노동자 루시 보드(Lucie Baud), 프랑스 노동운동의 잊혀진 선구자

섬유 공장에서 일한 루시 보드(Lucie Baud, 1870~1913)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 노동조합을 직접 설립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프랑스 이제르(Isère) 지방 비지유(Vizille) 일대에서 활동한 그녀는 오늘날 프랑스 여성 노동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반항하는 노동자 루시 보드(Lucie Baud), 프랑스 노동운동의 잊혀진 선구자루시 보드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1870년 가톨릭 신앙을 지닌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았으며, 12세에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시골 경비순찰원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1902년, 32세였던 그녀는 '비지유 지역 견직 노동조합(Syndicat des ouvriers de la soie du canton de Vizille)'을 창설하고 서기를 맡았습니다. 이 조합은 섬유산업의 기계화와 자동화로 인한 임금 하락을 막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랭스(Reims)로 대표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었지만, 발언 허가를 얻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사망하자 루시는 두 아이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생계는 오직 자신의 노동자 월급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근무 조건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견습공들은 그녀처럼 12살부터 일하기 시작했고, 하루 근무 시간은 12시간에 달했습니다.

파업의 지도자

반항하는 노동자 루시 보드(Lucie Baud), 프랑스 노동운동의 잊혀진 선구자1905년, 루시 보드는 노동조합 운동에 더욱 깊이 뛰어들었습니다. 공장의 열악한 근무 조건에 항의하기 위해 그녀는 104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는데,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업계에서 이런 규모의 장기 파업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적대적이던 상인들도 결국 파업 참가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지지의 뜻을 보였습니다. 또한 루시는 파업에 동참하지 못해 주변의 따돌림까지 받던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사용자와의 대립에서 노동자 측 대표로 나섰고, 해고된 뒤 부아롱(Voiron)의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906년 부아롱에서도 새로운 파업을 이끌었지만, 한때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절망에 빠진 루시는 권총으로 턱을 세 번 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1908년에는 자신의 투쟁에 대한 증언문을 집필했고, 이 글은 잡지 《르 무브망 소시알리스트(Le Mouvement Socialiste)》에 게재되었습니다.

루시 보드는 1913년, 겨우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투쟁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미셸 페로(Michelle Perrot)는 2012년 그녀의 삶을 조명한 저서 《멜랑콜리 우브리에르(Mélancolie Ouvrière, 노동자의 우울)》를 펴내며 이 잊혀진 반항자의 이름을 다시 세상에 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