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타기시족(Tagish) 출신의 샤우 틀라(Shaaw Tláa), 흔히 케이트 카맥(Kate Carmack)으로 알려진 그녀(약 1857~1920)는 캐나다에서 대량의 금광을 발견한 탐사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로는 오랫동안 그녀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젊은 미망인
캐나다 북부 유콘(Yukon) 지역의 카크로스(Carcross)에서 태어난 샤우 틀라는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 부부의 딸이었습니다. 어머니 구스두틴(Gus'dutéen)은 타기시족 출신이었고, 아버지 카치가와(Kaachgaawáa)는 알래스카 남동부 원주민인 틀링깃(Tlingit) 큰까마귀 씨족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녀는 부모와 일곱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성장했으며, 훗날 타기시족의 전설적인 이야기꾼 앤젤라 시드니(Angela Sidney)가 그녀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샤우 틀라는 사촌인 컬투스(Kult'ús)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 초 독감 유행병으로 남편과 딸을 잃었고, 젊은 미망인이 된 그녀는 고향 마을로 돌아와 생활하게 됩니다. 이후 그녀의 오빠 케이시(Keish), 즉 '스쿠컴 짐 메이슨(Skookum Jim Mason)'과 조카 카구(Dawson Charlie)는 백인 미국인 탐광가 조지 카맥(George Carmack)과 동업 관계를 맺었고, 샤우 틀라는 그해 조지와 재혼하여 '케이트 카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893년 딸 그래피 그레이스 카맥(Graphie Grace Carmack)이 태어났습니다.
골드러시의 시작
1896년, 케이트와 남편은 유콘 서쪽 클론다이크 강(Klondike River) 하구에서 여행하며 낚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찾아 나선 오빠와 조카 역시 합류하면서 소규모 탐사대가 꾸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탐사 도중, 일행은 당시 '래빗 크릭(Rabbit Creek)'으로 불리던 클론다이크 강의 지류인 보난자 크릭(Bonanza Creek)에서 대량의 금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견의 영광은 조지 카맥이 독차지했지만, 실제로는 케이트와 오빠 케이시의 참여가 컸으며 오늘날 이들은 공동 발견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록들은 케이트가 진짜 최초 발견자였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이 발견은 엄청난 골드러시를 촉발시켰습니다. 불과 3년 만에 약 10만 명의 탐광가가 클론다이크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카맥 가족은 부유해져 조지의 여동생 로즈 왓슨(Rose Watson)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는 아내와 딸을 극빈 상태로 남겨둔 채 다른 여인 마르그리트 라임(Marguerite Laimee)과 결혼하기 위해 떠나버렸습니다. 케이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법정에 섰지만, 결혼을 증명할 서류가 없어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카크로스로 돌아온 케이트와 그래피는 오빠 케이시가 자신의 집 근처에 지어준 집에 정착하며 남은 삶을 이어갔습니다. 샤우 틀라—케이트 카맥은 1920년 3월,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 유행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묘비에는 "Gold I bring to crown him again"(내가 황금을 가져다 다시 왕관을 씌우리라)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2018년, 탐사대의 남성 멤버들보다 한참 뒤에야 샤우 틀라—케이트 카맥은 마침내 캐나다 광업 명예의 전당(Canadian Mining Hall of Fame)에 헌액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