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교의 여왕'으로 불린 마리 라보(1801~1881)는 19세기 뉴올리언스에서 활동한 인물로, 부두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사제 중 한 명입니다.
노예주에서 태어난 자유민
1801년 9월 10일, 마리 라보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자유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해방된 흑인 여성인 마르그리트 앙리(마르그리트 다르캉텔)와 프랑스계 정치인 샤를 라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아버지 샤를은 샤를로트 페로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네 명의 딸을 두었으며, 훗날 뉴올리언스의 제5대 시장이 됩니다.
마리가 태어날 무렵, 루이지애나는 스페인 통치 40년 만에 잠시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나폴레옹은 이 땅을 독립한 지 30년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미합중국에 팔아넘깁니다. 당시 뉴올리언스는 노예 인구가 가장 많은 주 중 하나였던 루이지애나의 역동적인 수도였습니다. 1830년 기준으로 루이지애나에는 42,000명의 노예가 있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고되고 힘든 작업인 사탕수수 재배는 수많은 플랜테이션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미망인에서 '플라자주' 관계로
1819년 8월, 마리 라보는 아이티 출신 크레올인 자크 파리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1804년 아이티 혁명 이후의 이민 물결을 따라 루이지애나에 정착한 인물로, 뉴올리언스의 역사적 중심지인 프렌치 쿼터(비외 카레)에서 목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펠리시트(결혼 2년 전에 태어남)와 앙젤(1820년생)이라는 두 딸이 있었지만, 기록 속에서 두 아이의 행적은 1820년대 이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자크 파리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마리는 한동안 '파리 미망인'으로 불렸습니다. 백인 가정을 방문해 일하는 미용사가 된 그녀는 프랑스계 백인 크레올인 크리스토프 루이 듀미니 드 글라피옹과 동거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 루이지애나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던 '플라자주(plaçage)' 제도, 즉 흑인 또는 혼혈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의 내연 관계였습니다. 출생 및 세례 기록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는 일곱 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성인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마리 오카리스트 엘루아즈 라보와 마리 필로메느 글라피옹 두 딸뿐이었습니다.
부두교의 여왕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마리 라보는 부두교 여사제가 되어 오컬트, 허브 치료, 치유술, 점복 등을 행했습니다. 서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에서 기원한 종교인 부두교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을 통해 루이지애나 전역에 널리 퍼졌습니다. 식민 지배층에 의해 금지되어 은밀히 행해져야 했던 이 종교는 유럽의 규율과 기독교와의 접촉, 그리고 노예제라는 억압 속에서 독특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1804년 혁명 이후 아이티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더욱 힘을 얻은 부두교는 뉴올리언스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산토도밍고의 영향력 있는 부두 여사제의 손녀로 알려진 마리는 위대한 맘보(mambo, 여사제)로 인정받으며 '부두교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과 정원에서 비밀 의식을 주관했는데, 이곳에서 그녀는 뱀의 모습으로 현현한다는 신격 '좀비(Zombi)'의 영혼을 불러냈습니다. 또한 공공 장소인 콩고 광장(Congo Square)과 생장 베이유(Bayou Saint-Jean)가 폰차트레인 호수와 합류하는 지점에서도 대규모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노래와 춤, 음악이 어우러진 의식이 진행되었고, 전승에 따르면 영적인 빙의 현상도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마리는 루이지애나를 넘어선 지역에서도 존경과 명성을 누렸습니다. 결혼 문제, 부부 갈등, 출산, 법률 분쟁, 재정과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민을 안고 사람들이 그녀의 조언과 점복 능력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의식을 집행하는 것 외에도, 마리는 불행을 막거나 행운을 불러오기 위한 조언과 부적(talisman)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죽음과 불멸의 전설
마리 라보는 1881년 6월, 7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으며 뉴올리언스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죽은 직후부터 시내에서 마리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뉴올리언스 부두교의 역사와 깊이 얽힌 신화적 인물인 마리 라보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노래와 소설 등 다양한 창작물 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