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10월 14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의 국왕 해럴드 2세가 이끄는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승자가 된 윌리엄은 '정복자 윌리엄(윌리엄 1세)'으로 불리며,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잉글랜드 왕좌에 노르만 왕조를 확립했습니다. 현대 영국의 기틀을 마련한 이 전투는 중세 서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며, 두 나라의 운명을 바꾼 결과로 그 의미가 확실합니다. 동시에 프랑스 역사상 중요한 전투이기도 한데, 유명한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이 원정의 모험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헤이스팅스 전투의 배경
11세기 후반 노르망디는 공작 로베르 2세('악마'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위대한 로베르)의 친아들 윌리엄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1027년생으로 '사생아'라는 별명을 가진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국 내 경쟁 세력들과 수년간 싸워야 했고, 1047년에 이르러서야 귀족들에 대한 권위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노르망디는 부유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강력한 공국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해협 건너편에서는 잉글랜드 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1066년 1월 5일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사망한 다음 날, 처남이자 앵글로색슨 귀족인 해럴드가 왕위를 장악하고 당시 왕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던 요크 대성당에서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그의 사촌인 참회왕 에드워드는 1051년 그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고, 이 결정을 공식적으로 알릴 책임은 해럴드에게 있었습니다. 따라서 윌리엄은 자신의 유산을 되찾을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먼저 사절단을 로마로 파견했습니다. 해럴드가 에드워드 왕에게 한 약속을 저버려 위증죄를 범했다고 판단한 윌리엄은 그를 파문시키고, 잉글랜드 원정에 대한 교황 알렉산더 2세의 지원을 얻어냈습니다. 윌리엄은 교황청 깃발 아래 해협을 건너게 됩니다.
노르만 침공의 준비
윌리엄은 병사뿐 아니라 말, 무기, 식량까지 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튼튼한 배를 건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수개월간의 준비 끝에 함대는 총 1,400척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병력 수송용이 400척, 말 수송용이 1,000척이었습니다. 영주와 기사를 포함한 수많은 지원병이 원정에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여러 지역, 심지어 이탈리아 출신으로, 모험과 새로운 땅, 전리품에 대한 열망과 함께 교황이 윌리엄의 사업에 내린 축복을 믿고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윌리엄의 군대는 기병 2,000명을 포함해 약 7,000명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고 폭풍이 몰아치면서 해협 횡단은 지연되었고, 한 달 반을 기다린 끝에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1066년 9월 28일, 함대는 마침내 항해에 나섰고 횡단 과정에서 큰 장애 없이 도착했습니다. 반면 해럴드의 함대는 바람의 희생자가 되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해럴드는 특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윌리엄이 상륙하려는 바로 이 시점, 북해에는 또 다른 위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참회왕 에드워드의 친척이자 노르웨이 왕인 하랄드 역시 왕관을 넘겨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해럴드는 1066년 9월 25일 스탬퍼드브리지 전투에서 노르웨이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헤이스팅스 전투의 전개
윌리엄의 군대는 9월 29일 서식스(Sussex) 해안의 페븐시(Pevensey)에 상륙했습니다. 잉글랜드군과 신속히 맞서기로 결심한 노르만군은 헤이스팅스로 진격했고, 해럴드의 군대는 잉글랜드 남부로 남하했습니다. 10월 13일 잉글랜드군이 헤이스팅스 인근에 도착해 노르만군을 발견하고 언덕 위에 진을 쳤습니다. 10월 14일 아침, 맞수인 두 군대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르만군은 궁수와 기병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형의 이점을 누리며 방패로 이루어진 벽을 형성한 잉글랜드군을 좀처럼 뚫지 못한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습니다.
윌리엄은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자군이 후퇴하는 척하게 하여 해럴드의 군대를 언덕에서 평원으로 유인한 것입니다. 흔들린 잉글랜드군은 여전히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지휘관 해럴드가 화살에 머리를 맞고 전사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마침내 희망을 잃었습니다. 잉글랜드군은 젠락 언덕(Senlac Hill)의 전략적 요충지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헤이스팅스 전투가 끝난 후, 소수의 잔류 병력만이 노르만 기병대의 공격을 피해 후퇴했습니다.
헤이스팅스 승리가 남긴 결과
결국 노르만족은 헤이스팅스에서 승리했습니다. 정복자 윌리엄은 1066년 12월 25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이후 수년간 그는 잉글랜드를 서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르망디 공작이기도 한 윌리엄은 동시에 프랑스 왕 필리프 1세의 가신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긴장의 원인이 되었고, 윌리엄은 장남 로베르 드 쿠르퇴즈(Robert de Courteheuse)와 필리프 국왕의 동맹과 맞서야 했습니다.
1087년 여름, 윌리엄은 프랑스 영토에서 프랑스 왕과 대치하던 중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9월 7일 루앙에서 숨을 거두었고, 유언에 따라 생테티엔드캉 수도원에 안장되었습니다. 둘째 아들 기욤 르 루(Guillaume le Roux, 윌리엄 2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노르만 왕조는 잉글랜드에 영구히 자리 잡았습니다. 프랑크 왕국과의 강력한 연결고리는 훗날 백년전쟁까지 이어질 다음 세기의 거대한 경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 헤이스팅스: 1066년 10월 14일(Hastings, 14 octobre 1066), 피에르 부에(Pierre Bouet) 지음, 탈랑디에(Tallandier), 2014.
- 정복자 윌리엄: 잉글랜드를 점령한 노르만인(Guillaume le Conquérant), 프랑수아 뇌보(François Neveux) 지음, 우에스트프랑스(Ouest-Franc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