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누가 아이스맨을 죽였나? 5000년 미라 '외치'의 미스터리

얼음 속에서 깨어난 선사시대의 미스터리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 산악지대의 빙하 속에서 약 5000년간 얼어 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1991년 등산객들에 의해 녹아내린 눈 위에 드러난 이 미라는 오늘날 이탈리아 볼차노 박물관의 냉동 보관실에 안치되어 있다. 발견 후 11년 동안 '아이스맨(얼음 인간)'으로 불리는 이 미라는 모든 각도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여름, 여전히 얼어 있는 그의 몸을 조사하던 전문가들은 그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써야 할 결정적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외치(Ötzi)'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미라는 일부 학자들이 추정했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전쟁, 살인, 혹은 종교적 제물의 희생자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X선이 밝혀낸 결정적 단서

X선 검사 결과, 아이스맨의 왼쪽 어깨에 화살촉이 박혀 있는 것이 드러났다. 스스로 입힐 수 없는 상처였다. 미라의 굳어진 피부 아래 작은 검은 반점으로 나타나는 이 상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검사에서 간과되어 왔다. 상처에 화살 파편이 남아 있지 않고 피흔적도 없지만, 외치가 등 뒤에서 화살에 맞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왜 그를 죽였을까?

"아직 확실히 알 방법은 없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 소속 고고학자 요한 라인하르트(Johan Reinhard)는 말한다. 라인하르트는 미라 연구에 익숙한 학자다. 1995년 페루 네바도 암파토 산에서 발견한 제물 희생자인 잉카 얼음 소녀 미라도 그의 발견품이다. 안데스와 히말라야 등지의 산악 문화를 연구해 온 경험은 그에게 아이스맨의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제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

"그가 죽은 장소를 보십시오." 라인하르트는 설명한다. "외치가 발견된 곳은 외츠탈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두 봉우리 사이의 좁은 협곡입니다. 산악 민족들이 신들에게 바침을 올리던 바로 그런 종류의 장소죠. 청동기 시대 유럽에서 이런 숭배 행위가 중요했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구리기 시대에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는 징후들이 있습니다."

라인하르트의 해석은 미라 곁에서 발견된 유물들에 관한 여러 의문을 함께 풀어준다. 물건을 부수는 것은 신석기 시대 유럽에서 의례적으로 행해진 관습으로, 미라 주변에서 발견된 부서진 화살들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구리 도끼다. 구리는 광산에서 채굴된 것이며, 도구 제작에 쓰이는 귀중한 금속의 원산지인 산은 전 세계 광부들의 숭배 대상이었다고 라인하르트는 말한다. 단순한 살인이라면 그렇게 유용한 물건을 두고 갈 리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이라면 참여자들은 사후 세계에서 아이스맨이 사용하도록, 혹은 신들에게 바치는 헌물로 도끼를 남겨두었을 수 있다.

폭풍우를 피하기엔 부적합한 장소

또 다른 단서도 있다. 시신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자연 웅덩이에서 발견되었다. 기존 가설에 따르면 그는 폭풍우를 피해 그곳에 몸을 숨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 웅덩이는 깊지 않을 뿐 아니라 협곡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풍우를 피하기에는 최악의 장소죠." 라인하르트는 분석한다. 오히려 외치는 자신을 죽인 사람들에 의해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시신이 놀랍도록 잘 보존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유럽 학계의 반발

라인하르트의 견해는 유럽 전문가들, 특히 미라 관리를 담당하는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의 병리학자 에두아르트 에가르터 비글(Eduard Egarter Vigl)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외치는 등 뒤에서 화살에 맞았습니다"라고 그는 반박하며, 이는 공격을 피하려던 중이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이들은 화살이 의례적 살해의 효율적인 도구가 아니며, 구리기 시대에 다른 제물 희생의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인신공양 개념을 선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라인하르트는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제 주장을 반박할 수 없으며, 제 가설이 알려진 사실들을 더 잘 설명한다고 믿습니다. 논란이 될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증거를 다른 관점에서 재평가할 때입니다. 이 유물들을 서로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적·종교적·지리적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브라질판, 2002년 2월호

함께 알아두면 좋은 외치 이야기

  • 외치는 1991년 9월 독일인 부부 헬무트와 에리카 시몬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처음에는 실패한 등산객의 시신으로 여겨졌다.
  • 사망 당시 나이는 45세 전후, 키는 약 160cm로 추정된다.
  • 몸에는 60개 이상의 문신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통증 치료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외치는 현재 이탈리아 볼차노의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에 영구 보존되어 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전시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