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현장이 기록한 미히라쿨라의 불교 박해와 잘라와르 불교 석굴의 비밀

현장이 기록한 미히라쿨라의 불교 박해와 잘라와르 불교 석굴의 비밀

현장이 기록한 미히라쿨라의 불교 박해

서기 631년, 즉 7세기에 인도를 방문한 중국의 불교 승려 현장(玄奘)은 흉나(Huna)족의 통치자 미히라쿨라(Mihirkula)가 불교도들에게 자행한 끔찍한 만행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불교 사원과 비하라(승원), 스투파를 약탈하고 불교도들을 잔혹하게 학살했으며, 자신의 왕국 전역에서 불교 승가(僧伽)의 완전한 파괴를 명령했다고 전합니다.

현장에 따르면 미히라쿨라는 1,600개의 불교 스투파와 비하라를 파괴하고 수많은 불교 신자들을 학살했습니다. 물론 현장의 기록에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토라마나(Toramana)와 미히라쿨라가 라자스탄의 불교도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수도원을 파괴하고 장서고를 불태웠으며, 사원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불교 승려들을 살해했습니다. 당시 굽타(Gupta) 왕조의 발라디티야(Baladitya)와 말와(Malwa)의 야쇼다르만(Yashodharma)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힘을 합쳐 흉나족을 인도에서 몰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불교도들의 존폐 위기

흉나족의 참혹한 파괴로 인해 불교 승려들은 존재 자체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많은 승려들이 티베트, 중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지로 피신했습니다. 라자스탄의 수천 명의 불교 승려들은 부처님께서 내리신 계율을 따르며 숲과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동굴에 숨었던 승려들의 최후가 어땠는지 알려주는 비문이나 문자 기록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를 구하려 했던 이 승려들은 결국 흉나족의 창끝에 쓰러졌거나, 중국·미얀마·스리랑카로 도피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잘라와르 지역의 불교 석굴

잘라와르(Jhalawar) 지구의 바와니만디(Bhawanimandi) 마을에서 만다소르(Mandsaur)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잘라와르 지구의 콜비(Kolvi), 하티야고드(Hatyagod), 비나야가(Binayaga), 구나이(Gunai)와 마디아프라데시주 만다소르 지구의 다르마라제슈와르(Dharmarajeshwar)에서 6~8세기 불교 승려들의 석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백 명의 불교 승려들이 울창한 숲속 언덕에 석굴을 만들고 거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석굴의 규모와 방, 침상, 수행당, 불교 사원, 베란다, 2층 석굴 등의 존재는 승려들이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며 생활했음을 시사합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석굴뿐 아니라 예술적인 스투파와 부처님 상도 조각했습니다. 불교 승려들의 끌 소리가 아직도 이 석굴 사이에 메아리치는 듯합니다. 영국 관리였던 임피(Dr. Impey) 박사가 콜비 석굴을 발견했으며, 커닝햄(Cunningham) 장군 또한 이 석굴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잘라와르 지구부터 만다소르까지 펼쳐진 이 석굴들은 끌로 쉽게 깎을 수 있는 부드러운 라테라이트(laterite) 암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역 전체에서 보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석굴들이 모두 상좌부(히나야나) 불교 승려들의 것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반면 부처님 상은 여러 점 남아 있는데, 일부는 석굴 밖에, 일부는 석굴 안에 위치해 있으며, 석굴 안의 부처님 상들은 그것들이 예배 대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잘라와르 지역 상좌부 불교의 독특한 특징은 승려들이 이곳에서 실제로 부처님 상을 예배했다는 점입니다. 상좌부 불교는 본래 부처님을 신이 아닌 위대한 인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상좌부에서는 부처님 상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콜비 석굴의 구조와 생활 흔적

콜비에는 약 50개의 석굴이 있는데, 그중 일부는 파괴되었습니다. 석굴의 일반적인 크기는 길이 약 4.6m, 너비 약 4m, 높이 약 6.7m입니다. 석굴 안에는 흙과 돌을 섞어 만든 약 60cm 높이의 단이 한쪽에 있는데, 이것이 침상으로 추정됩니다. 머리 쪽은 흙과 돌로 높게 쌓고 발 쪽은 아래로 경사져 있습니다.

아유르베다에 따르면 식사 후 바닥에 수평으로 눕기보다 배에서 머리까지 약간 높이를 두면 음식물이 빨리 소화되고 가스나 소화불량 같은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 석굴에 만들어진 이 침상들은 바로 이 원리에 따라 설계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 석굴에는 양쪽에 이러한 침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석굴은 하나의 방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 석굴은 내부에 여러 개의 방이 있습니다. 방과 함께 작은 공간들도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수행실이나 창고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콜비의 한 석굴에는 우물까지 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당시에는 진보된 장비도 화약 같은 폭발물도 없었기 때문에, 단단한 암반을 파서 우물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우물은 공공장소가 아닌 은밀한 위치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적의 눈을 피해 스스로를 숨기려던 승려들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콜비에는 설법 자세를 취한 높이 약 3.7m의 부처님 상도 암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사각형과 팔각형 형태로 암석을 깎아 만든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예술적 스투파가 많이 남아 있으며, 그중 일부는 아직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 석굴에는 연화좌 자세의 부처님 상이 있는데, 이런 석굴을 차이티야(chaitya)라고 부르며, 천장은 코끼리 등처럼 둥글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콜비에는 다른 차이티야들도 있지만 현재는 거의 파괴된 상태입니다.

주변 지역의 석굴들과 유적

콜비에서 13km 떨어진 비나야가 마을 근처 언덕에는 콜비의 석굴보다 작은 규모의 석굴 약 20개가 있습니다. 하티야고드라는 마을 언덕에는 5개의 석굴이 있고, 구나이 마을에도 4개의 석굴이 있습니다. 잘라와르 지구 다그(Dag) 근처 지역에도 니란자니(Niranjani) 석굴이라 불리는 석굴들이 남아 있습니다. 콜비, 비나야가, 하티야고드의 석굴들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비나야가와 하티야고드의 석굴에도 콜비와 같은 돌과 흙으로 만든 침상이 있습니다. 콜비의 일부 석굴은 2층 구조인 반면, 비나야가에는 1층 석굴만 있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약 100km를 이동하면 만다소르 지구가 시작됩니다. 다르마라제슈와르라는 곳에서는 말바 삼바트(Malav Samvat) 524년의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부처님은 '수가타(Sugata)'라는 이름으로 호칭되었습니다. 라자스탄 정부는 콜비와 비나야가 석굴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돌로 포장한 보행로와 방호벽을 건설했습니다. 덕분에 이 석굴들을 찾기가 한결 쉬워졌지만, 아직 주(州) 관광 지도에서 주요 명소로 자리 잡지 못한 만큼 관광객 유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잘라와르 지구 콜비, 비나야가, 하티야고드, 구나이 마을의 석굴들과 마디아프라데시 다르마라제슈와르의 석굴들은, 세월의 품속에 묻힌 불교 승려들의 비밀을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도 조용히 그 모습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