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불교는 왜 세계 종교로 발전했을까?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

불교는 왜 세계 종교로 발전했을까?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가 생전에 하나의 체계적인 종교로 정립되었지만, 그가 입멸한 뒤 제자들에 의해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일어난 여러 혁명적 운동 가운데 불교는 가장 큰 호응을 얻었으며, 짧은 시간 안에 인도 북부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남인도로도 확장되었고, 나아가 미얀마(버마), 스리랑카, 티베트,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인도차이나, 캄보디아 등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누구인가

'붓다(Buddh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붓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디(Bodhi)', 즉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붓다를 따르는 사람들을 불교도라 부르며, 그들이 믿는 종교를 불교라고 합니다. 불교의 창시자는 석가모니로, 기원전 563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공화국의 통치자였던 수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석가모니의 어린 시절 이름은 싯다르타였습니다. 어머니는 마야부인(마하마야)으로, 고라크푸르 지방에 있던 공화국 통치자의 딸이었습니다. 마야부인이 친정으로 가던 길에 네팔 테라이 지방의 룸비니 숲에서 싯다르타를 낳았고, 마야부인은 산고 끝에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계비인 프라자파티 고우타미에게 자랐습니다. 싯다르타가 태어났을 때 점성가들은 이 왕자가 훗날 위대한 전륜성왕이 되거나, 아니면 위대한 수행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해집니다.

싯다르타는 고우타미에게 자랐기 때문에 '고타마'라 불렸으며, 샤카(석가)족 크샤트리아(무사 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샤카무니(석가모니)'라 불립니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붓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수도다나는 수리야밍사(태양 왕조) 샤카족 크샤트리아였고, 그의 나라 카필라바스투는 오늘날 바스티 지구의 동쪽 경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성년이 된 싯다르타는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를 두었습니다.

대출가 — 궁궐을 떠나다

싯다르타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진중하고 사색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홀로 조용히 명상에 잠기곤 했는데, 생각에 빠지면 주변의 모든 것을 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늙음, 병, 죽음을 인간의 가장 두려운 적으로 여겼고, 이를 벗어나는 방법을 찾고자 갈망했습니다. 결혼 후 십여 년 동안 그는 집안에 머물면서도 계속 명상을 이어갔습니다.

29세 되던 해 어느 날 밤, 그는 세간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고 잠든 아내와 아들, 왕위와 영화를 모두 뒤로한 채 마부 차나와 함께 전차에 올라 진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불교 문헌에서 이 사건을 '마하비니시크라마나', 즉 대출가(大出家)라 부릅니다.

출가란 집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싯다르타는 아버지 나라의 경계를 벗어나자 마부와 말을 돌려보내고, 왕자의 옷과 장신구를 거지에게 내주며 수행자의 모습으로 변해 진리 탐구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수행과 깨달음

싯다르타는 마가다의 수도 라자그리하로 가서 당대 최고 권위의 브라만(바라문) 스승들의 선원에서 배웠지만, 그들이 자신이 찾는 해탈의 길을 가르쳐 주지 못하자 실망하고 떠났습니다. 궁을 떠날 때 함께했던 다섯 명의 동료가 그와 합류했습니다. 싯다르타는 다섯 동료와 함께 가야 근처의 우루벨라 숲에 들어가 6년간 극심한 고행을 했습니다. 몸이 앙상하게 바싹 마를 정도였지만 끝내 진리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몸을 괴롭히는 데는 아무런 이익이 없으며, 건강한 몸에서만 참된 지혜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결론에 실망한 다섯 동료는 그를 떠나 카시(베나레스)로 향했습니다. 이제 싯다르타는 홀로 명상하기 시작했습니다. 35세 되던 해 바이샤크 보름달 밤,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 있던 그는 마침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불교에서 이 사건을 '삼보디(sambodhi)', 즉 정각(正覺), 올바른 깨달음의 획득이라 부릅니다. 싯다르타는 이때부터 보디, 즉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붓다'라 불리게 되었고, 그가 실천한 가르침은 불교라 이름지어졌습니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는 보리수라 불렸고, 가야는 보드가야(菩提伽耶)로 명명되었습니다.

연기설과 열반

깨달음 속에서 싯다르타는 '연기(緣起)'의 원리를 깨닫고 '열반'에 도달했습니다. 연기(프라티티야 삼우트파다)에서 '연(緣)'은 인연이나 조건을, '기(起)'는 생겨남을 뜻합니다. 따라서 연기의 문자적 의미는 '조건에 의해 생겨남'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연기설이란 "세상의 모든 사물과 욕망은 원인과 결과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즉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으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열반(Nirvana)'의 문자적 의미는 해탈이지만, 넓은 의미의 열반은 세속적 갈망과 슬픔,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 즉 궁극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붓다는 세속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초전법륜 — 최초의 설법

붓다는 처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온갖 괴로움에 빠져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절규하는 모습을 보자, 자비로운 마음이 움직여 설법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붓다는 카시 근처의 사르나트에서 자신을 떠났던 다섯 동료에게 최초의 설법을 행했습니다. 불교 문헌에서 이 첫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부르며, 이는 '법의 바퀴를 굴린다'는 뜻입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네 방향으로 가서 가르침을 전파하라"고 명했습니다.

붓다 자신도 남은 45년의 생애를 설법에 바쳤습니다. 그는 일반 대중에게 팔리어로 가르침을 전했으며, 설법의 주 무대는 오늘날의 비하르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일부, 그리고 네팔 지역이었습니다. 붓다의 인격에는 남다른 매력이 있어서 왕과 서민 할 것 없이 모두 그의 가르침에 감화되었습니다. 붓다 생전에 이미 그의 추종자들은 상당히 조직된 교단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하파리열반 — 입멸

약 80세 무렵, 설법을 계속하던 붓다는 말라족의 수도 파바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이질(赤痢)에 걸렸습니다. 파바에서 쿠시나가라로 옮겨간 그는 기원전 483년, 80세를 일기로 그곳에서 입멸했습니다. 불교에서 이 사건을 '마하파리닌바나(大般涅槃)', 즉 위대한 열반의 성취라 부릅니다. 붓다는 인도 전역은 물론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까지 가르침이 전파된, 세계적 종교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