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제17장 – 푸라나 다르마(바이슈나비즘)의 대두와 발전 (3)

자이나교와 불교의 영향 아래 있던 일반 대중을 다시 베다 종교로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브라만들은 이 도전을 받아들여 베다 종교와 철학의 원리 및 사상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태로 정리하여 서사시, 스므리티, 푸라나를 저술했으며,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베다 종교인 푸라나 종교를 대중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베다 종교의 새로운 형태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즉 모리아 왕조 시기 전체에 걸쳐 고대의 제사 중심 베다 종교 대신 신앙(박티) 중심의 신화적 형태가 부여되었다.

2. 철학적 비전의 재정립

인도 철학의 근본 사상은 베다에 이미 존재했으며, 이는 브라만 문헌과 우파니샤드에서 더욱 발전했다. 푸라나 시대에는 같은 사상들이 새로운 고전적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카필라, 카나다 등의 선인들은 인도 철학의 선구자로 여겨지지만, 이들은 기존 사상을 체계적이고 정연하게 새롭게 제시했다.

3. 민간 신앙의 수용과 재해석

아리아인들은 데바들을 숭배했으나, 비아리아인들은 야크샤, 귀신, 무생물, 뱀 등을 숭배했다. 불교도들은 야크샤를 부처의 수호신으로 삼아 숭배하게 했고, 힌두교도들도 이를 모방하여 민간 신앙의 신격들을 그대로 유지하되 그 위에 베다 종교의 색채를 살짝 입혀 수용했다.

마투라에서는 바수데바(슈리 크리슈나) 숭배가 성행했는데, 그를 베다의 신 비슈누와 결합시킴으로써 베다 추종자들에게도 경배의 대상이 되게 했다. 리그베다에 언급된 루드라는 만물의 신 시바라는 새로운 형태로 숭배되었다. 베다 종교 부흥의 물결은 당시 숭배되던 모든 신격과 인물 속에 어떤 베다 신의 면모를 투영시켰다.

숲의 격렬한 신격들은 칼리와 루드라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인도 전역에서 숭배되던 다양한 신들—시바, 비슈누, 수리야, 스칸다 등—은 각기 다른 힘의 상징이 되었다. 조상 숭배의 대상도 어떤 신의 화신으로 간주되었으며, 모든 숭배 대상은 신성한 힘의 상징으로 재해석되었다.

4. 대중적 경전 서사의 창작

불교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자타카 이야기와 아바다나 문학이었다. 여기에는 부처와 보살의 전생담이 흥미롭게 담겨 있으며, 자비·보시·자기희생 등의 미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부처님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비유로 심오한 종교적 진리를 대중에게 전했고, 제자들은 이 기법을 자타카와 아바다나 문학에서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고대 베다 문학에는 대중적 요소가 미미했다. 브라만들은 불교의 영향 아래 고대 영웅들의 업적을 다룬 역사적 이야기를 설교적 서사로 탈바꿈시켰다.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새로운 판본이 만들어졌으며, 마하바라타의 주목적은 서사를 통해 새로운 종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슈리 크리슈나는 신이자 비슈누의 화신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비슈누와 시바를 찬양하는 노래가 불려지고 바가바드 기타가 널리 전파되었다. 마하바라타에는 기원전 400년부터 서기 200년경까지 거의 모든 종교·철학적 사상이 망라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라마야나 원전에서는 라마가 이상적 영웅이었으나, 2권부터 6권까지가 그런 형태인데, 푸라나 시대에 1권과 7권이 추가되면서 라마 역시 비슈누의 화신이 되었다. 두 대서사시는 신앙 중심의 바이슈나바와 시바교의 새로운 형태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현행 신화적 힌두교의 토대를 놓았고 푸라나들이 그 형태를 완성했다. 대부분의 푸라나가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5. 브라만 독점에서의 탈피

푸라나는 원래 제사장 브라만들이 낭독했으나, 아슈바메다 제사가 쇠퇴하면서 브라만들은 푸라나와의 연결고리를 잃었고, 낭독 역할은 수트라카라(경전 편찬자), 바드(시인), 이야기꾼들에게 넘어갔다. 후기 베다 시대에는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만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배우고 들을 수 있었으나,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푸라나는 여성과 수드라에게도 청취가 허용되었다.

6. 신화적 힌두교의 국가적 공인

숭가 왕조와 굽타 왕조의 통치자들은 바가바타 종교의 숭배자이자 후원자였다. 그들의 강력한 비호 아래 바이슈나비즘이 융성했다. 굽타 이후 프라티하라, 찬델라, 마우카리, 칼라추리, 발라비, 카마루파 등의 왕조도 바이슈나바나 시바교를 따랐다. 팔라 왕조는 불교를 지지했으나 세나 왕조는 바이슈나바와 시바교였다. 남방의 초기 찰루키아 왕들은 자이나교를 후원했으나 나중에는 힌두교로 돌아섰다.

라슈트라쿠타 왕조에서도 일부 군주는 자이나교를 믿었으나 대부분은 힌두교도였다. 팔라바와 호이살라의 초기 왕들은 자이나교를 지지했으나 후기 팔라바 왕들은 시바교, 후기 호이살라 왕들은 바이슈나바가 되었다. 이는 푸라나 종교가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불교와 자이나교가 충분한 왕실 후원을 받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이것이 그들의 쇠퇴 주요 원인 중 하나였음을 시사한다.


푸라나의 문화적 의의

푸라나는 신화적 힌두교의 혼이라 할 수 있다. 힌두교에 현재의 형태를 부여한 것이 바로 푸라나이다. 푸라나에서 성숙한 종교적·문화적 조화는 세계 그 어떤 종교와도 비교할 수 없다. 굽타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문학, 공예, 건축, 영성, 음악, 무용, 노래, 생활양식, 의복, 음식 등 삶의 모든 면면에 푸라나의 깊은 흔적이 새겨져 있다.

바르나슈라마 다르마와 바가바트 다르마의 조화

후기 베다 시대의 종교는 네 가지 바르나(계급)에 따른 직업과 네 가지 아슈라마(삶의 단계)에 기초한 생활 규율이 정립되었기에 '바르나슈라마 다르마'라고도 불린다. 푸라나들은 이 바르나슈라마 종교를 재정립하고 시바교와 바이슈나바교 속에 녹여냈다.

비슈누 푸라나에서 사가라 왕이 비슈누를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묻자, 아우르바 선인은 "자신의 바르나와 아슈라마의 의무를 다하는 자만이 지고의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쿠르마 푸라나에서 여신은 "해탈을 얻으려면 자기 지식과 더불어 베다와 스므리티가 정한 바르나슈라마 다르마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바유 푸라나는 "제사가 쇠퇴할 때 비슈누는 거듭 태어나 다르마를 세운다."고 전한다.

이 푸라나에서 시바는 바르나와 아슈라마의 각기 다른 행위의 기원으로 묘사된다. 푸라나 곳곳에는 바르나슈라마 종교를 확증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창작되어 있다.

비슈누 푸라나, 바유 푸라나, 바가바타 푸라나에는 베나 왕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인들은 그가 바르나슈라마 다르마를 어긴 죄로 야마로카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슈누 푸라나에서 야마는 사자들에게 "비슈누 숭배자들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 그들은 바르나슈라마 다르마의 규율을 지키기 때문이다."고 명한다. 모든 판차라트라 상히타에서도 바르나슈라마 다르마가 수용되었다. 이렇게 푸라나를 통해 바이슈나비즘과 시바교는 고대 사회 질서의 수호자가 되었다.

푸라나에 담긴 베다 사상의 새로운 형태

푸라나에서는 베다의 사상, 신격, 신념이 새로운 서사로 뒷받침된다. 푸라나 사유의 요소적 기초는 베다 사상이다. 베다의 아비야(불변), 악샤라(불멸), 크샤라(가변) 푸루샤는 푸라나에서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가 되었다.

베다의 '트리담 비디아' 또는 '삽타담 비디아'는 푸라나에서 '비슈누의 바마나 화신' 이야기로, 베다의 '닥샤-아디티 비디아'는 '닥샤 제사 파괴' 이야기로, 베다의 '아그니-초이스 비디아'는 마츠야 푸라나의 '쿠마라 탄생 이야기'로, 베다의 '치트라-시슈 비디아'(샤타파타 브라흐마나에서 '아그니-루파 비디아'라 불림)는 마르칸데야 푸라나 루드라 장의 '아슈타무르티 비디아'로 흡수되었다.

마찬가지로 베다의 소마 비디아, 비라자드헨우 비디아, 데바수라 비디아, 브리그반기로마야-아그니소마 비디아, 피트리 비디아, 사비트리 비디아, 파슈 비디아는 각각 해양 휘젓기, 프리투의 대지 착유, 인드라의 브리타 퇴치, 수카냐-치아바나 결혼, 슈라다 의식, 사비트리-사티아반 이야기, पश우 학문 같은 신화적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따라서 베다와 푸라나 사이에는 근본적이고 요소적인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승 불교의 마하카루나(대자비) 원리의 수용

푸라나가 베다 종교와 바가바타 종교를 융합했듯, 불교 대승파 역시 마하카루나(대자비)와 로크망갈(세계 복지)의 이상을 수용했다. 마르칸데야 푸라나의 비데하 왕 비파치트 이야기에서 산티베다는 보디차랴바타라와 유사한 사상을 펼친다. 이 왕은 선업으로 천상에 올랐으나 사소한 과실로 잠시 지옥의 형벌도 받았다.

지옥에 이르러 중생들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듣자 마음이 녹아, 천상의 향락을 포기하고 지옥에 머물며 고통받는 이들을 섬기기로 결심했다. 인드라와 야마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야마가 지옥의 모든 중생을 구원한 뒤에야 왕은 천상으로 향했다.

마르칸데야 푸라나의 하리슈찬드라 왕 이야기에서도, 천신들이 그를 천상으로 데려가려 하자 왕은 "왕이 행한 일은 백성의 협력 덕분이니 그 과보도 백성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내 영원한 쾌락보다 백성의 하루 행복이 낫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사고와 표현 속에 보살의 대자비 정신이 깃들어 있다.

다양한 경향의 조화

푸라나에는 행위(카르마)와 해탈(목샤), 입세(프라브리티)와 출세(니브리티)가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다. 파드마 푸라나, 아그니 푸라나, 쿠르마 푸라나, 가루다 푸라나 등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행위를 하는 것이 의무라고 말한다. 학업을 마치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공공 사업을 하는 것은 모든 이의 필수 의무다. 출가와 가정 포기는 민중에 반하므로 비난받는다.

인간이 일을 통해 행복을 얻는 무한한 힘은 세속 생활을 통해서만 계발될 수 있지만, 세속 생활을 영위하면서 '사다라나 다르마(보편적 종교)'와 '스바다르마(자신의 의무)'를 조화시켜야 한다. '사다라나 다르마'는 공공적이고 보편적이며, 아힘사(비폭력), 크샤마(용서), 다마(감관 제어), 다야(자비), 다나(보시), 샤우차(청결), 사트야(진리), 타파스(고행), 즈나나(지혜) 등을 포함한다.

파드마 푸라나에 따르면 비폭력이 최상이요, 모든 종교의 정수가 거기에 담겨 있다. 이 푸라나에서 진리는 비폭력과 결합되며, 진리는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쾌한 진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 나라심하 푸라나에서는 마음에서 탐욕과 분노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며, 이를 위해 주신(이슈타 데바타)에 대한 신애가 요구된다. 신들 사이를 차별하거나 어떤 신을 비난하는 것은 대죄악이다. 왜냐하면 모든 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사다라나 다르마'를 '스바다르마'의 테두리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계급, 바르나, 아슈라마, 성향과 관련된다. 이에 따라 단식, 자선, 속죄의 규정이 있다.

세계 최대의 평화로운 종교 혁명

푸라나는 인도를 '카르마부미(행위의 땅)'이자 '푸냐부미(성스러운 땅)'라 부르지만, 그 시선은 세계의 모든 중생을 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푸라나에 담긴 종교·문화적 조화의 이상'은 인도 밖으로도 퍼져나갔다. 신화적 문화가 동남아시아 제도로 전해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러한 신화 문화의 전파는 칼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수한 문화적 과정을 통해 여러 섬나라 사람들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신화적 종교를 제외하고는 전 지구적으로 이토록 평화롭고 광범위한 종교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