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를 연구하는 역사가에게 자료의 확보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일부 문제는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답을 찾지 못한 채 남겨지기도 하고, 반대로 새로운 자료의 발견이나 첨단 연구 기법의 적용 덕분에 뜻밖에 해결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과거의 이미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화폐와 비문, 파피루스가 말해주는 내용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연구 결과보다 자료 조사 과정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주제는 중요하다. 발굴 조사를 통해 여전히 새로운 자료가 속속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연구 환경 자체도 크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확 체감의 법칙처럼 대부분의 새로운 자료는 기존의 통설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만, 때로는 경이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고대 자료를 정확하게 범주화하기는 어렵지만, 통상 고고학적 유물, 문학 텍스트, 문서 자료로 구분한다. 이 글에서는 고고학적 유물과 고대 작가들이 대중을 위해 집필한 문헌 자료는 논외로 하고, 고전 고대의 문서 자료 중 핵심적인 세 가지 유형, 즉 화폐·비문·파피루스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의 사례들을 통해 이 자료들이 여전히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고대사 자료 연구가 지금도 활발히 진행 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화폐: 지배력과 선전의 매체
화폐는 고대사 연구에 특히 귀중한 자료다. 화폐제나 경제사 문제에 많은 데이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사에 관한 풍부한 정보도 담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후 그리스 세계의 생존 군주들은 화폐에 자신의 초상을 넣었고, 로마 황제들도 이 관행을 이어갔다. 화폐 앞면에는 황제나 그 친족의 초상이 들어갔고, 뒷면에는 군사적 상징부터 의인화된 미덕까지 다양한 도상이 새겨졌다. 문자 또한 함께 주조되었다. 하나의 화폐가 그림과 글자로 방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폐는 누가 권력자인지, 그리고 그 인물이 어떤 자질과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보여주는 효과적인 매체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제정 초기 로마의 화폐 디자인은 의도적으로 설계되었으며, 특정 슬로건이 담긴 화폐가 특정 지역으로 보내졌다. 이런 점에서 화폐는 강력한 선전 수단이었고, 권력 다툼에서도 활용될 수 있었다. 다만 화폐에 사용된 이미지와 문구를 실제로 누가 책임지고 결정했는지에 대한 논쟁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화폐 해석은 정치사 재구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화폐 발행권은 합법적인 통치자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화폐에 새겨진 로마 황제의 초상은 황제 지위의 징표였다. 그러나 왕위 찬탈자들도 그 지위를 차지한 뒤 화폐에 이를 드러냈다. 3세기가 좋은 예인데, 이 시기 로마 제국은 근본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를 맞았고 황제 계승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였다. 그 세기 후반에는 왕위 요구자들이 여러 지역에서 황제 칭호를 주장하며 화폐를 주조했다. 실제로 2003년에는 영국 옥스퍼드셔에서 금속 탐지기를 이용해 '도미티아누스 2세'의 화폐가 발견되었다. 도미티아누스 2세라는 황제는 다른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이 발견은 그가 황제 지위를 찬탈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 성공은 지역적으로 국한되어 있었고 지극히 짧은 기간에 그쳤다.
비문: 돌 위에 새겨진 공적 기록
문자가 아직 발전 단계에 있던 시절에도 저자에게 지대한 가치가 있는 텍스트는 돌이나 그 외 내구성 있는 재료에 새겨져 공개되었고, 이후 세대에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비문은 도시나 기관의 공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것부터 사생활과 관련된 것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
1989년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금속 탐지기를 통해 발견된 청동판에는 중요한 텍스트가 남아 있는데, 바로 로마 원로원 의원 피소(Piso) 재판에 대한 원로원 결의문이다. 이전까지 이 사건에 대한 정보는 타키투스(Tacitus)라는 위대한 로마 역사가의 기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피소는 게르마니쿠스 살해 혐의와 대역죄(불경죄)로 서기 20년에 처벌받았는데, 로마인의 눈에 대역죄는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범죄 중 하나였다. 재판이 마무리되기 전 피소는 자살했지만, 설령 죽음으로도 그에게 충분한 처벌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피소의 사후에도 계속되는 조치가 결정되었는데, 그 조치는 그에게 남은 것, 즉 '기억'을 겨냥한 것이었다. 오늘날 이를 damnatio memoriae(기억 말살형)라고 부른다. 예컨대 여성들이 평소처럼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고, 피소의 초상화와 조각상은 모두 걷어내야 했다.
원로원 결의문의 텍스트는 damnatio memoriae의 운영 방식뿐 아니라, 속주 총독(이 경우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이 로마 중앙 정부에 대해 지닌 태도에 관해서도 정보를 준다. 로마에서 내려진 중요한 결정을 속주에 공포하는 것은 총독의 임무였는데, 피소에 대한 원로원 결의문이 스페인에서 여러 부본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이티카 총독이 로마에 충성을 다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비문은 플라비우스 왕조 황제들이 오늘날 콜로세움으로 알려진 거대 건축 사업을 어떻게 재정 조달했는지 설명해준다. 청동 글자를 끼웠던 구멍을 단서로 삼아, 독일의 역사학자 게자 알푈디(Geza Alföldy)는 1995년 원래 비문을 복원했다. 그에 따르면 황제 티투스(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가 새로운 원형극장을 ex manubiis, 즉 서기 70년 유대 반란 진압 당시 로마군이 거둔 전리품으로 지었다고 명시되어 있다. 비문은 원래 베스파시아누스를 언급했지만, 그가 공사 완공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텍스트는 티투스를 가리키도록 수정되었다.
파피루스: 고대의 종이에 남겨진 기록
고대의 종이인 파피루스에는 두 그룹의 텍스트가 전해진다. 첫 번째는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문학적 성격의 텍스트다. 우리가 가진 고전 문학에 대한 지식은 때로 순수하게 파피루스로 전승된 텍스트에만 근거한다. 좋은 예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아테네 민주정체에 대한 고찰, 이른바 Athenaion politeia(아테네 국체론)를 들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2004년에 공개된, 그리스 시인 사포(Sappho)의 미공개 시가 담긴 파피루스가 있다.
두 번째 그룹인 문서 파피루스는 각종 사안을 기록했으며 주로 사적이고 실용적인 용도로 쓰였다. 지난 세기 이 분야의 중요한 발견으로는 P. London VI 1912과 P. Giss. 40으로 출판된 텍스트가 있다. 첫 번째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재위 41~54년)가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게 보낸 편지다. 황제들은 도시들의 서신에 답신을 보냈는데, 이 편지의 행간에서는 알렉산드리아 시민이 클라우디우스에게 보냈던 이전 서신의 내용을 복원할 수 있으며, 로마 제국 행정 조직에 관한 추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황제가 도시 주민에게 보내는 서신이 공포되는 방식, 제국 숭배의 요소,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과 유대인 사이에 존재하던 정치적 긴장, 그리고 로마 정부가 이를 중재하려 한 방식 등이다.
다른 텍스트는 카라칼라 황제(재위 211~217년)의 칙령으로, 로마 제국의 모든 자유 신민에게 로마 시민권이 부여된다고 선포하고 있다. 또한 2000년에는 한 공식 문서의 서명이 이집트의 유명한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친필 서명으로 확인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서 파피루스는 일상적 실천에 관한 새로운 지식도 제공한다. 예컨대 2006년에는 몬세라트 도서관에서 광범위한 그리스어 단어 목록이 담긴 파피루스가 발견되면서, 이를 활용한 그리스어 속기에 관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현대 기술이 여는 새로운 가능성
이처럼 미지의 자료는 여전히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 기술은 이미 알려진 자료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컴퓨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양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화폐, 비문, 파피루스를 검색하고 열람하는 일이 한결 간편해졌다. 또한 레이저 기술과 스캔을 활용해 탄화된 파피루스를 보존하고 판독하려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너무 깨약해서 펼칠 수 없는 파피루스는 물론, 팔림프세스트(지워진 기록 위에 덧쓴 필사본)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1월 History Magazine이 보도한 고대 조각상의 색채 연구 역시 기술 발전 덕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고대사의 주요 골격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연구되지 않은 자료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분명히 남아 있다. 새로운 자료 하나하나는 거대한 퍼즐에 맞춰 넣을 수 있는 조각과 같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서 자료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퍼즐을 더 완성해줄 조각을 계속 찾아나가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는 한, 발견할 것은 언제나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