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그들은 영주의 양을 씻고 싶지 않았습니다” — 기괴하기 짝이 없던 중세 잉글랜드 법령 6가지

어떤 상황에도 통하는 법률 요령? 터무니없는 규정과 처벌? 상식을 초월하는 금지 조항? 중세 잉글랜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아니 그 이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흔히 ‘암흑시대’라고 불리던 중세였지만, 법 집행의 꼼꼼함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어둡지 않았습니다. 서유럽에서는 일상의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규율하는 법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도시와 카운티마다 저마다의 규정이 있었고, 그 내용은 종종 완전히 상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하나로 묶은 공통점이 있다면, 혼란스러운 시대적 현실 속에 일종의 강박적인 질서를 부여하려는 집념이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이언 모티머(Ian Mortimer)의 책 『도시에서, 바깥에서, 수도원에서 — 중세 잉글랜드 생존법』에 폭넓게 인용된 우스터 순회 법령(Worcester Circuit Statutes)입니다.

이 법령에 따르면 곡물은 여름철에는 “11시 종이 울리기 전까지”, 겨울철에는 12시 이전에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광장에는 말을 묶어둘 수 없었고(당시의 주차 금지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물 가죽 벗기기는 다리 위에 지정된 단 한 곳에서만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리에서는 동물의 배설물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단서도 붙었습니다. 빨래 역시 특정 장소에서만 할 수 있었으며, “이웃의 불쾌함을 유발하도록” 돼지를 풀어 놓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역시 높지 않아서, “그 어떤 시민도 평의원, 시 참사관 또는 도시 판사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명문화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법이 지나치게 세세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아직 기괴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법령의 미로 속에는 반드시 터무니없는 조항들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영주의 양을 씻고 싶지 않았습니다” — 기괴하기 짝이 없던 중세 잉글랜드 법령 6가지

1. 첫째, 누룩 없는 빵과 치즈를 삼켜라

역사에는 피고의 유무죄를 가리기 위해 달군 쇠를 밟게 하는 등의 잔혹한 신명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상을 입었다면 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훨씬 무해하고, 지금은 완전히 잊힌 형태의 재판도 있었습니다. 초기 중세 잉글랜드의 소위 ‘빵과 치즈 시험’이 그것입니다. 이 시험에서 피고인은 누룩을 넣지 않은 보리빵과 5월에 만든 양젖 치즈를 덩어리째 삼켜야 했습니다. 미사 도중에 그것을 무사히 삼키는 데 성공하면 무죄로 판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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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째, 영주의 양을 씻어라

『이상하고 기묘한 법률 잡학의 책(The Book of Strange and Curious Legal Oddities)』의 저자 네이선 벨로프스키(Nathan Belofsky)는 13세기 잉글랜드 법원 기록에 남은 사건을 소개합니다. 당시 한 수도원 마을의 주민 전원이 “영주의 양을 씻지 않은 죄”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재판의 세부 내용이나 법적 근거에 대한 정보는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주의 양을 씻고 싶지 않았습니다” — 기괴하기 짝이 없던 중세 잉글랜드 법령 6가지

3. 셋째, 백조의 알을 훔치지 마라

14~15세기 왕실 조례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그 누구도 “매, 송골매 또는 백조의 둥지에서 알을 훔칠” 수 없었습니다. 숲을 소유한 자가 아닌 한 올무(덫)를 지니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잉어는 “몸속 상태가 겉모습만큼 좋지 않다면”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중세판 위생 관리청·환경 단체·산림 감시대가 한데 합쳐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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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넷째, 염소털 베개에서 자지 마라

1485년경, 헨리 7세 국왕은 백성이 무엇 위에서 잠자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군주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해지는 포고령에 따르면, 잉글랜드 전역에서 베개는 “오직 한 가지 방법, 즉 마른 털깃으로만 채워야 하며, 풀이나 그 밖의 어떤 부스러기 재료로도 채워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침대 속에는 말총, 사슴털, 염소털 또는 풀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군주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재료들은 “사람의 체온에 데워지면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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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섯째, 테니스를 치지 마라

이언 모티머가 앞선 책에서 전하듯, 우스터에서는 위험하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일부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경마나 카드, 주사위가 아니라 바로… 테니스였습니다. “그 누구도 시청 건물 안에서 테니스를 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항의 내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규정은 잉글랜드 전역에서 매우 흔했습니다.

우스터뿐 아니라 인근 워릭셔에서도 같은 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반면 서식스의 라이(Rye)에서는 테니스가 허용되었지만, 오직… 성탄절 하루에만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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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섯째, 고래를 잡아먹지 마라

13세기 잉글랜드의 법학자 헨리 드 브랙튼(Henry de Bracton)은 “모든 고래의 머리는 왕에게 속하고, 모든 고래의 꼬리는 왕비에게 속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규칙은 에드워드 2세(1307~1327) 통치기에 마침내 법전화되었고, 놀랍게도 오늘날까지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왕국 해안 근처에서 잡히거나 파도에 밀려 해변으로 좌초된 고래는 자동으로 군주의 소유가 됩니다. 같은 법리는 돌고래는 물론, 심지어 철갑상어에도 적용됩니다.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개입하던 이런 법령들을 들여다보면, 중세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촘촘한 규칙 속에서 흘러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교통법규나 위생 규정도 몇백 년 후 누군가의 ‘기괴한 법령 컬렉션’에 실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참고 문헌

  1. Nathan Belofsky, The Book of Strange and Curious Legal Oddities, Penguin, 2010.
  2. William Blackstone,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 vol. I, Clarendon Press, 1765.
  3. Christopher Daniell, Death and Burial in Medieval England 1066–1550, Routledge, 2005.
  4. Ian Mortimer, In town, outside, in a monastery. How to survive in medieval England?, Astra Publishing House, 2017.
  5. Kerry Segrave, Lie Detectors: A Social History, McFarland & Company,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