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중세에는 아내를 얼마에 살 수 있었을까?

상속녀의 손과 그녀의 혼인권? 재산 많은 과부와의 결혼? 전직 왕비와의 동화 같은 웨딩? 원하는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중세에는 무엇이든 가능했으니, 신부를 사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물어보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리고 주머니를 충분히 깊숙이 파고들 준비만 되어 있다면요.

흔히 말하는 '암흑시대'와 그 후 몇 세기 동안, 결혼은 로맨티시즘과는 거의 무관했습니다. 오히려 소녀와 그녀의 지참금이 오가는 일종의 거래로 취급되었죠. 보통은 장차 사돈이 될 가정이 자녀의 배우자를 골라 혼인 조건을 협상했습니다. 프랜시스 기스(Francis Gies)와 조지프 기스(Joseph Gies) 부부가 저서 『중세 여성의 삶』에서 설명합니다.

"신부 쪽 가문은 지참금 또는 재산의 일부를 냈습니다. 귀족이나 상인의 경우 대개 토지나 돈을 의미했고, 농민이라면 옷가지와 살림살이, 주방 도구들이었습니다. (...) 남편은 자신의 재산, 보통은 토지를 냈습니다. 관습에 따라 영지의 3분의 1, 때로는 절반까지, 혹은 특정 구획의 토지나 밭을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출연(出資)은 여인의 혼인 허락에 대한 대가라기보다는, 남편이 요절했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에 가까웠습니다. 덕분에 미망인과 자녀들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죠. 물론 다시 혼인할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재혼하는 순간 남편의 사후에도 남는 재산은 고인의 가문으로 돌아갔으니까요.

중세에는 아내를 얼마에 살 수 있었을까?

사진은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는 무지왕 존. 그는 첫 아내의 혼인권을 팔아 큰돈을 벌었습니다.

싼 값에 신부를 팝니다

하지만 때로는 총각이 특정 여인과 결혼할 권리를 위해 큰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돈은 과부가 될 경우를 대비한 담보가 아니라, 장래 신부의 후견인이 딸을 시집보내며 잃는 수입에 대한 '보상금'이었습니다. 기스 부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봉건 영주는 자신의 피후견인을 '팔' 수도 있었습니다. 즉, 상속녀의 재산을 장악할 특권과 자신의 수입원 일부를 잃는 데 대한 보상으로, 그 여인에게 구혼하려는 자에게 요금을 요구한 것입니다. 실제로 여성의 혼인 상태는 일종의 자본으로 널리 인식되어, 보험 증권처럼 되팔리고 매입되었습니다."

실제로 1214년, 잉글랜드의 무지왕 존(John Lackland)은 첫 아내인 글로스터의 아비사(Avisa of Gloucester)를 '현금화'했습니다. 결혼이 무효로 선언된 지 15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중세에는 애초에 오늘날 같은 이혼 제도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대목이죠. 이 왕으로부터 에식스 백작 제프리 핏츠제프리(Geoffrey FitzGeoffrey)가 값—자그마치 2만 마르크—을 지불하고 그녀를 샀습니다.

비교해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1207년 어느 궁정 신하가 한 상속녀와의 결혼을 위해 지불한 금액은 1,200마르크였고, 또 다른 이는 재산 상속과 지참금 일부가 딸린 과부와의 결혼에 겨우 100마르크를 냈습니다. 한편 마르크 1개면 당시 시세로 좋은 젖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었습니다.

핏츠제프리는 자신의 '수확'을 겨우 2년간 누렸습니다. 1216년, 그는 기사 토너먼트 중 사망했는데, 불행히도 그때까지 왕에게 진 빚을 갚지 못했고, 그 결과 천문학적인 채무가 상속인들에게 고스란히 떨어졌습니다.

중세에는 아내를 얼마에 살 수 있었을까?

이 글은 프랜시스 & 조지프 기스 부부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중세 여성의 삶』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여성 역시 스스로 주머니를 열어, 누구와 결혼할지—그리고 애초에 결혼할 것인지조차—직접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13세기 초 존 왕의 회계 장부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리처드 핏츠로저(Richard FitzRoger)의 딸 퀸힐다는, 왕의 적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친지들의 조언에 따라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대가로 이십 마르크와 말 두 필을 지불해야 한다."

또 다른 여인은 남편이 죽은 뒤 20마르크를 내고 미혼으로 남을 권리를 샀습니다. 자유의 값은 특별히 비싸지 않았던 셈입니다. 전직 왕비의 손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금액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죠.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면,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하기 위해 요금을 내야 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노할 만하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다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Francis and Joseph Gies, The Life of a Medieval Woman(『중세 여성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