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여름철을 바다나 호수에서 맨몸으로 물놀이하는 풍경 없이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수욕이 오락과 휴식, 여가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겨우 백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는 이유가 오로지 건강 때문이었고, 반드시 따뜻한 물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해수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던 셈입니다.
공포의 대상이던 바닷가
고대부터 18세기 무렵까지 해변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습니다. 물이라는 자연의 파괴적인 힘에 대한 경외감이 컸고, 성경에 묘사된 대홍수나 심해에 살고 있다는 괴물들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도 한몫했습니다. 크라켄, 스킬라, 카리브디스 같은 전설의 생물이 실제로 물 밖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상상 속 위협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배를 타고 나타나는 해적이나 식민지 개척자들이라는 현실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죠. 여기에 버려진 난파선과 홍수, 폭풍까지 더하면 해안 풍경이 편안한 휴식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에 들어가는 두려움은 서서히 극복되었고, 한때 으스스하기만 하던 해변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건강을 위한 물놀이
수 세기에 걸쳐 목욕에 대한 태도는 지금과 매우 달랐습니다. 일상적인 위생 관리라곤 얼굴과 손을 씻는 정도였고, 온몸을 씻는 일은 가끔씩이나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매일 목욕하기도 했는데 한동안 사치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고, 또 다른 이들은 "잦은 씻기는 수명을 단축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게다가 가정에 수도와 욕실이 없었던 현실도 위생 유지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야 비로소 천연 온천수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닷물은 놀라운 치유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우울증, 결핵, 나병, 통풍, 구루병, 발기부전, 생리통, 그리고 악명 높은 '히스테리'까지 다양한 질환의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나아가 목욕뿐 아니라 바닷물을 직접 마시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태양과 신선한 바닷바람의 건강 증진 효과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바다에서 수영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치료 목적이었지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선원조차 그런 기술을 내세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치료용 목욕은 차가운 물에 재빨리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물의 온도가 최대 16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죠. 치료 과정은 보통 두 달가량 이어졌으며, 환자는 매일 15분씩 물에 담갔습니다. 흥미롭게도 겨울이 이런 치료에 가장 적합한 계절로 꼽혔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결코 쾌적하지 않은 이 방법이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참 의아할 따름입니다.
부유층만의 전유물, 해변 휴양지
최초의 해변 요양지는 잉글랜드 요크셔의 스카버러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발전은 1730년대에 이루어졌습니다. 바닷물 치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목욕 마차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880년대까지 영국은 치료 목욕이 실제로 시행된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프랑스와 독일에도 휴양지가 건설되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1803년 그단스크 인근 브제즈노에 첫 번째 목욕장이 설립되었습니다.

요양지의 성장에는 철도 인프라의 확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기차 여행이 점점 쉬워지고 빨라지며 접근성도 좋아졌습니다. 휴양 시설 자체도 발전을 거듭해, 많은 곳에서 연극 공연, 무도회, 콘서트가 열리며 환자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목욕장 숙박, 해수욕, 치료 프로그램의 비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귀족과 명문가, 그리고 이후에는 부르주아 계층뿐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치료를 감당할 경제력이 없었고, 몇 주간 일자리를 떠나 휴양지에 머물 여유도 없었습니다. 치유를 위한 휴양은 오직 가장 부유하고, 시간까지 여유로운 이들을 위한 특권이었던 셈입니다.
목욕 마차, 물가까지의 프라이버시
부유한 환자들은 휴양지에서도 그에 걸맞은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속옷 차림이나 몸에 달라붙어 신체 윤곽을 지나치도록 드러내는 젖은 옷을 입고 해변을 활보하는 일, 특히 여성의 경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간주되었죠. 이러한 프라이버시와 은밀함을 보장하기 위해 목욕 마차가 탄생했습니다. 정확히 누가, 언제 이 장치를 개발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735년의 스케치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미 18세기 전반에 널리 알려지고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욕 마차는 하나의 작은 나무 오두막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고, 바퀴는 두 개 또는 네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대개 말이 끌었지만, 사람이 직접 밀거나 끄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차가 아직 해변에 있을 때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가 문을 닫고 갈아입었습니다. 그다음 마차가 물속으로 "진입"하면 문이 다시 열리고, 그 안에서 물에 들어가거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목욕을 마친 뒤에는 다시 마차 안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물러났습니다. 품위를 잃지 않고 도덕적 기준을 완벽히 지키며 바다와 작별하는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목욕 마차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노년층, 환자, 몸이 허약한 이들이 이용했는데, 빅토리아 여왕 역시 개인 전용 목욕 마차를 소유했다고 합니다.
치료에서 즐거움으로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바닷가에서 보내는 시간이 본격적인 휴식과 여가의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해수욕은 더 이상 환자에게 처방되는 치료가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락이 된 것입니다. 전간기에는 선탠 열풍이 불면서 편안하게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최초의 선베드가 고안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다에 더 자주, 더 깊이 들어가면서 사고와 익사 사고도 함께 늘어났고, 이에 따라 구조 서비스의 발전이 강조되었습니다. 아울러 기차 노선이 확충되며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이제는 가장 부유한 계층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해안 도시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수욕은 특권층의 치료법에서 모두가 누리는 여름의 즐거움으로 완전히 변모하게 됩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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