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광산, 농장에서 가장 어린 아이들에게 맡겨졌던 일들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19세기, 심지어 20세기에도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유럽 노동자 계급에 합류했다. 과연 그들의 '순수의 시대'를 빼앗아야만 했을까?
산업 국가 영국의 힘은 실뭉치를 재빨리 갈아 끼우고, 좁은 굴뚝 속으로 기어 들어가 그을음을 닦고, 광산의 어둠 속에서 석탄 수레를 끌던 '작은 손들'이 만들어냈다. 18세기와 19세기는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에 걸쳐 근대성이 태어난 깊은 변혁의 시기였다.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이 거대한 전환은 삶의 모든 영역을 뒤흔들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일상의 방식, 사고방식, 사랑과 죽음을 경험하는 방식,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방식에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반복적이고 배우기 쉬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1909년 미국에서 촬영된 사진.
18세기는 가장 어리고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노동자가 되었을까? 사실 미성년자의 노동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 이전에도 아이들은 집과 농마당에서 일하고, 소규모 작업장에서 직업을 익히거나 부모에게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아동 노동이 하나의 '일상'이 된 것은 값싼 노동력을 갈구하는 산업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그리고 부모의 임금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게 된 가난한 가정들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공장주들에게 완벽했던 노동력
산업 자본가들의 눈에 아이들, 특히 고아들은 최상급의 노동자 소재였다. 거의 또는 전혀 임금을 받지 못했고, 작은 손 덕분에 좁은 터널과 기계 밑새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민첩하고 건강하기까지 했다. 권위와 폭력으로 강제로 복종시킬 수 있었고, 다른 삶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성인보다 훨씬 빨리 공장의 규율에 적응했다.
그들은 반복적이고 배우기 쉬운 작업을 충실히 해내는 데 능숙했다. 스스로 반란을 일으키기 어려웠고, 저항하려는 어떠한 시도든 물리력으로 짓밟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혹독한 노동에 지쳐 쓰러지면 새로운 아이들로 언제든 쉽게 교체할 수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최연소자들의 노동이 산업혁명의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여겼다. 어떤 이들은 이를 잘못된 것으로 보지 않았을은커녕, 오히려 노동자 본인들에게 유익하다고까지 생각했다. 화학자이자 의사, 그리고 초기 경영학 이론가 중 한 명인 앤드류 유어(Andrew Ure)는 공장에 고용된 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언제나 명랑하고 산뜻해 보였으며, 나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즐기듯 가벼운 근육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끊어진 실을 묶어내는 그 민첩함을 지켜보며 나는 기뻤고, 작은 손가락의 몇 초간의 운동 뒤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이 작은 요정들의 노동은 마치 스포츠와 같아서, 그 반복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솜씨를 길러준다."
열심히 일하는 어린아이들에게 매료된 이 학자는 현존하는 공장 체제를 찬양하는 책 『제조업의 철학』(The Philosophy of Manufactures, 1835)을 펴냈다. 이 책의 목적은 경영자, 감독관, 노동자들에게 '올바른 발전의 길'을 따르도록 설득하고, '위험한' 사상에서 눈을 떼게 만드는 것이었다. 예컨대 근무 조건의 개선이나 미성년자 노동 금지 같은 생각들 말이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
산업혁명기 동안 영국 1,800만 인구 중 거의 40%가 15세 미만의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초가집과 노동자용 하숙방에서 태어난 이들의 어린 시절에는 역동적인 산업화와 그에 수반된 사회적 변화가 가장 깊이 새겨져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은 실로 다양한 일에 종사했다. 그중 일부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어 대중의 관심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법적 규제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특히 그런 것은 부유한 가정의 하녀로 일하면서도 자신의 집에서는 무료로 비슷한 일을 떠맡아야 했던 여자아이들의 노동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농번기에는 종종 들일에 동원되었다. 자료 사진.
'혁명의 아이들'은 대형 공장의 직조기 앞에서 일하는 소년소녀들만이 아니다. 부모의 턱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혹은 고아였기 때문에 농촌으로, 상류층 가정으로, 소규모 작업장으로, 그리고 성냥과 꽃, 심지어 자신의 몸을 파는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도 있다. 거대한 변화가 물질적·사회적 빈곤을 안겨준 모든 작은 아이들이다. 산업 체제 안에 완전히 갇혀 버린 아이들과 여러 방식으로 그 체제를 비껴가려 했던 아이들, 예속당하고 노예처럼 부려진 아이들과 반항하고 싸우고 항의했던 아이들 모두다. 그들은 근대 유럽을 형성한 거대한 변혁을 온몸으로 겪어낸 아이들이다.
그들은 19세기 낭만주의가 상상한 '순수의 시대'라는 통념 속의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아기들이 아니다. 달콤한 천사라고 부를 수도, 무력한 희생자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들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로, 자신이 던져진 극도로 험난한 세상 속에서 버티고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아이들이다.
출처: 위 글은 즈나크 호리존트(Znak Horyzont) 출판사에서 간행한 카타지나 노바크(Katarzyna Nowak)의 책 『산업혁명의 아이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