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죽은 자를 되살리려다
18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가 개구리 다리에 전기 자극을 가한 실험은 당시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미 죽은 시체가 살아난 듯 근육이 수축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갈바니는 자신의 장치가 죽은 몸을 몇 초간 되살릴 수 있다고 믿었고, 이후 학자들은 전기 충격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점점 더 큰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세기가 바뀌 무렵, 갈바니의 조카 조반니 알디니(Giovanni Aldini)는 거대한 구리 배터리와 아연 판으로 구성된 장치를 들고 유럽 전역을 순회했습니다. 그가 선보인 공개 시연은 관중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양, 소, 개 등 동물들의 시신에 전기를 흘려보내자 마치 갑자기 살아난 것처럼 반응했습니다. 사지는 사방으로 움직였고, 눈꺼풀이 들려 눈동자가 굴렀으며, 이빨은 딱딱 소리를 냈습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동물 전기(animal electricity)'라고 불렀습니다.
움직이는 잘린 머리
결국 실험은 인간의 시신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알디니는 교수형을 선고받았던 살인범 게오르크 포스터(Georg Forster)의 시신을 받아 왕립외과의사대학(Royal College of Surgeons)에서 공개 시연을 진행했습니다. 장치를 고인의 얼굴에 대자 근육이 경련하고 눈이 뜨였으며, 다리와 팔이 움직이고 주먹이 꽉 쥐어졌습니다. 관람객들은 고인이 잠시 실제로 살아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열린 시연들에서는 죽은 자의 얼굴에 일그러진 표정, 심지어 미소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얼굴 표정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합니다. 미소는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고, 슬픈 표정은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얼굴이 죽은 사람의 것이라면 어떨까요? 우리 뇌는 이 정보의 혼란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감정도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런 실험을 지켜본 관객들 중에는 기절하거나 구토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탁자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잘린 손보다, 산 사람만이 지닐 감정을 보여주는 죽은 얼굴이 훨씬 더 강한 충격을 줍니다.
실제로 1803년 브로츠와프(Wrocław)에서는 벤트(Wendt)라는 의사가 참수형을 선고받은 죄수의 머리를 연구에 사용했습니다. 참수 직후 그는 갈바니 프로브를 고인의 척수에 접촉시켰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고인의 얼굴에 일그러진 표정이 나타났고, 눈은 빛에 반응했을 뿐만 아니라 소리에도 반응했습니다(벤트가 죄수의 이름을 귓가에 외치자 동공이 그를 향해 움직였다고 전해집니다). 입도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은 참수된 자가 아직 살아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19세기 독일에서는 갈바니 치료가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끌다가 결국 금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단두대가 남긴 의문
단두대는 13세기 유럽에 이미 등장했으며, 프랑스 혁명기에 개량되어 혁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즉각적인 처형 방식에 정신적으로 적응해야 했습니다. 날카로운 칼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생명을 앗아갔고, 처형을 지켜본 사람들은 의문을 품습니다. 죽음이 정말 이렇게 빠를 수 있는가? 신비로운 죽음의 순간이 너무 짧았던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으면서 자신이 참수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프랑스 혁명기에는 참수 직후에도 머리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프랑스 정치인 마라를 살해한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Corday)의 경우, 처형 후 집행인이 뺨을 후려쳤더니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는 더 있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려는 듯한 머리, 입술과 눈이 움직이는 머리 등이 그 예입니다. 과연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참수된 인간의 머리가 움직임을 잃지 않는 것은 복잡한 생리학적 과정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참수된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잔존 생명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뇌가 아직 기능하고 있으며 참수된 사람이 고통을 느낀다고 믿었기에, 단두대는 매우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으로 여겨졌습니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머리가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열을 더 오래 유지하며 참수 후 약 15분까지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단두대가 (당시 기준으로) 인도적인 처형 기구라고 주장했습니다. 죄수의 죽음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진영이 형성되어 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과학에서 흔히 있듯이, 단두대에 의한 죽음은 한편으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인도적인 죽음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잘린 머리를 향한 실험들
참수된 사람의 머리에서 생명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잘린 머리를 창으로 찌르고,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등의 실험이 행해졌습니다. 얼굴에 나타나는 움직임이 생명의 징후인지, 아니면 생명 없는 단순한 움직임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 의사 장 밥티스트 뱅상 라보르드(Jean Baptiste Vincent Laborde)는 인간 목의 동맥을 살아있는 개의 순환계에 연결해 피를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죽은 얼굴에 충격과 불신의 표정이 2초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같은 의사는 참수된 머리가 구경꾼들의 환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기록했으며, 처형 집행자들이 참수된 머리를 흔들어 피를 제거함으로써 불쌍한 자가 더 빨리 죽게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도 연구는 계속되었지만, 이전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식 문제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동물이 더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1908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찰스 거스리(Charles Guthrie)는 개의 머리를 다른 개의 몸에 이식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합병증이 뒤따랐습니다. 1930년대에는 히브리대학교의 연구에서 임신한 양이 참수되었습니다.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된 이 양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새끼 양을 낳았습니다. 소련에서는 블라디미르 데미코프(Vladimir Demikhov)가 한 개의 몸에 또 다른 머리를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개들은 최대 일주일까지 생존했습니다. 여기서 인간에게도 머리 이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질 뻔했습니다.
냉동된 머리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크라이오프리저베이션(cryopreservation), 즉 사후에 머리를 절단하여 냉동 보관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세계에는 이러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특수한 크라이오닉스 연구소들이 있습니다. 이들 연구소의 고객들은 어쩌면 미래에 인간의 머리 이식이 가능해져 자신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의학은 한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다양한 장기 이식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얼굴 전체를 이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미래에는 인간의 머리도 같은 방식으로 이식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험난한 땅을 탐험하는 중입니다. 얼굴과 머리는 신장, 폐, 심장과 달리 시각적으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매우 특별한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윤리적 문제와 논란이 따릅니다.
인류는 인간의 머리에 대해 매우 강한 매혹을 느껴왔습니다. 이 매혹은 생물학적, 철학적, 그리고 실용적인 이유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됩니다.
참고 문헌
- Jordanowa L., Medical Mediations: Mind, Body and the Guillotine, History Workshop Journal, vol. 28, No. 1, 1989.
- Kershaw A., A History of the Guillotine, New York 1993.
- Larson F., The History of the World Described by the Decapitated Heads, Warsaw 2014.
- Smith P., Narrating the Guillotine: Punishment Technology as Myth and Symbol, Theory, Culture and Society, Vol. 20, No. 5,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