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작센 왕조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 폴란드 공화국의 몰락은 이때 결정되었나?

최근 수십 년에 들어서야 그의 통치가 다소 관대한 시선으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전간기 역사학자들이 평했듯 "게으르고 무분별한 살덩어리"였다는 주장에 이견을 제시하며, 어쩌면 그는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과연 이 군주를 미화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1733년부터 1763년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통치한 아우구스투스 3세는 늘 혹평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오만함과 우둔함에 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이 쓰여졌고, 심지어 지루함에 못 이겨 개에게 총을 쐈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그를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미덕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부정적 평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1989년 출간된 야체크 스타셰프스키(Jacek Staszewski) 교수의 전기로, 그는 끊임없이 조롱당해 온 국왕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유능한 정치인, 심지어 개혁가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가 통치해야 했던 폴란드 사회의 전반적인 후진성 앞에서 처음부터 패배가 예정된 위치에 있었다는 평가였습니다.

"정치적 재능이 전혀 없었다"

역사학계의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대해, 야기엘론 대학교의 아담 페르와코프스키(Adam Perłakowski)는 저서 『폴란드의 군주들: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힙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2세 '강왕'의 아들을 "개혁가"라고 부르려면 상당한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아우구스투스 3세는 변호될 수 없습니다. 찬성과 반대 논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면 반대 쪽 논거가 압도적일 것입니다."

그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우구스투스 3세는 정치적 재능이 전혀 없었습니다. 많은 상황에서 그는 단순히 이해하지 못했고 상황에 압도당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연방이나 작센뿐 아니라 중부 유럽 전체에서까지 주도적인 정치적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시대에 궁정은 점차 개혁의 추진자로서의 기능을 잃었고, 결국 국왕은 완전히 수동적으로 변했습니다."

작센 왕조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 폴란드 공화국의 몰락은 이때 결정되었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훗날의 아우구스투스 3세)는 대개 아버지의 뜻에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순종적인 아들이었고, 통치에 대한 열망도 없었습니다.

왜 폴란드 왕위에 오른 두 번째 베틴 가문 군주의 업적에 대해 이토록 가혹한 평가가 나오는 걸까요? 페르와코프스키가 제시한 그의 '죄목' 목록은 실로 깁니다. 역사학자는 왕위 계승자 시절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어느 시점부터 성장이 멈춰버렸다고 지적합니다. 유망했던 왕자는 "수동적이고 느릿느릿하며 국정에 거의 관심이 없는" 인물로 변해버렸습니다. 정치는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는 정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야망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위 계승자는 최대한 빨리 통치하고 결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라고 크라쿠프의 연구자는 주장합니다.

통치 의욕의 부재는 작센과 폴란드 양국의 통치 조직 체계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국왕이 도입한 '각료제'를 높이 평가한 스타셰프스키 교수의 주장과 달리, 페르와코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 기간에는 국가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잘 설계된 권력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 3세가 선택한 방식에는 단 하나의 목적만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편안함입니다. 그는 각료를 임명해 국정 처리의 짐을 자신의 어깨에서 덜어냈으니, 스스로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국왕이 수우코프스키를 총리로 하는 최초의 폴란드-작센 연합 정부를 구상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발상을 해내려면 적어도 뭔가 구상이라는 게 있어야 하니까요."

작센 왕조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 폴란드 공화국의 몰락은 이때 결정되었나?

이 글의 흥미로운 내용은 미로스와프 마치오로프스키(Mirosław Maciorowski)와 베아타 마치오프스카(Beata Maciejowska)의 책 『폴란드의 군주들: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아고라 출판사, 2018)에 기반합니다.

역사학자는 덧붙여, 왕실의 편안함은 알렉산데르 유제프 수우코프스키의 후임자인 헨리크 브륄(Henryk Brühl)의 집권기에 절정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브륄의 주요 임무는 국고에 돈이 아직 남아 있는지 걱정하며 신경 쓰던 군주를 안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예, 폐하(Jawohl, Eure Majestät)"라고 각료는 매번 답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관심을 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작센 출신 군주의 빈약한 정치적 재능은 실레지아 전쟁에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첫 번째 전쟁(1740~1742)에서 그는 프로이센 편에 서서 참전했는데, 분쟁 지역의 일부를 획득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작센의 영토를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하길 바랐습니다. 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잃었고, 두 나라를 통합하지도 못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실레지아를 나눌 생각이 없었으니까요"라고 페르와코프스키는 말합니다. 그리고 프로이센 국왕이 우리 군주를 "손쉽게 이겼다"고 덧붙입니다.

군주의 다른 구상들도 실효성이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통치 내내 그의 움직임은 매우 서툴렀고, 1750년대에는 비참하기까지 했습니다"라고 역사학자는 냉정하게 평합니다. 그는 또한 지금까지 가장 혹독한 비판자들조차 인정해 온 아우구스투스 3세의 세련된 문화적 취향마저 부정합니다. 물론 국왕은 예술을 사랑했고, 그의 시대에 궁정에서는 최고의 가수들이 공연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작센 출신 왕이 특유의 "멍청하고 원시적인" 오페라 대본을 즐겼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치 오늘날 뛰어난 테너가 «트랄랄라, 안텍은 손풍금을 불어요»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격입니다. 하지만 국왕은 그런 대본을 몹시 좋아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런 전제를 들으면, 연구자가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를 정치적 재앙으로 분류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방이 정치 개혁의 기회를 잃은 것이 바로 그의 통치 기간이 아니었을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페르와코프스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 아우구스투스 3세는 작센과 폴란드 양쪽에서 패배했습니다. 내정과 외교 양면에서 모두 졌습니다. 폴란드 공화국의 러시아에 대한 종속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스크바의 뜻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가 주권은 점진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입법부, 즉 세임(Sejm)의 위기는 모든 변화의 시도를 좌절시켰습니다."

작센 왕조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 폴란드 공화국의 몰락은 이때 결정되었나?

아우구스투스 3세는 무능한 왕이었지만, 헌신적이고 사랑이 깊은 배우자였습니다. 아내 마리아 요제파와 함께 있는 초상.

"아우구스투스 3세가 이러한 현상에 맞설 방법이 없었다는 평가, 즉 개혁하고자 했지만 사회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할 수 없었고, 할 줄 몰랐으며, 진지하게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파괴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는 1936년 작센 출신 왕을 "게으르고 무분별한 살덩어리"라고 묘사한 브와디스와프 코노프친스키(Władysław Konopczyński) 교수의 극단적 표현까지는 쓰지 않겠다고 선을 그습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3세의 부부간 정절을 칭찬하는데, 이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어쨌든 1719년 폴란드-작센 왕자의 결혼식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차라리 배우자의 역할에 만족했어야 했다는 숨은 암시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및 참고 자료

이 글은 과거의 흥미로운 일화와 놀라운 역사적 디테일을 짧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자료로, 다음 문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미로스와프 마치오로프스키, 베아타 마치오프스카, 『폴란드의 군주들: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 아고라 출판사, 2018.
작센 왕조 아우구스투스 3세의 통치, 폴란드 공화국의 몰락은 이때 결정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