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생몰년도에 큰 관심이 없었다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연대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메시아의 존재와 그가 전한 말씀을 믿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구세주의 탄생과 관련된 축일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흥미롭게도 기독교 초창기 몇 세기 동안 이 날짜만이 유일한 성탄절로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서기 200년경 교부(敎父) 중 한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예수의 출생 연도뿐 아니라 날짜까지 확정하고자 하는 이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는 구세주가 5월 20일에 태어났다고 주장했으며, 필요하다면 4월 19~20일 혹은 11월 17일의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언급된 최초의 기록은 또 다른 교부인 로마의 히폴리토스가 서기 204년경 저술한 『다니엘서 주석』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날짜는 3세기 후반에 인정을 받았지만, 현대 연구에 따르면 원래 주석에는 4월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고, 12월이라는 시점은 훨씬 나중에 덧붙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진위 여부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12월 출생 기록은 354년의 로마 연대기 문서에 남아 있다. 순교자 명단 목록 앞머리에는 "1월 칼렌드(calends) 8일 전, 곧 12월 25일에 그리스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담겨 있다. 다만 이 기록이 실재한다 해도, 이런 날짜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임신 계산인가, 동지인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는 평범한 신학적 추측의 산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잉태는 3월 25일, 즉 성모 마리아에게 천사가 잉태를 알린 '수태 고지(영보대축일)'에 이루어졌다고 믿어졌다. 그리고 출생은 잉태로부터 9개월 후에 일어나야 하므로, 간단한 산술 계산을 통해 12월 25일이라는 날짜가 도출된 것이다.

한 가지 설에 따르면 12월 25일은 수태 고지일로부터 9개월을 계산해 정해졌다고 한다.
또 널리 통용되는 이론에 따르면, 3~4세기 교차 시기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당시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에서 12월 25일이 동지에 해당했기 때문에 이 날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그레고리력 개정 이후 동지는 12월 21~22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태양에 비유함으로써,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상징성을 부여하려던 것이다.
이 모든 혼란을 정리한 이는 교황 율리우스 1세(337~352)였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12월 25일로 임의로 확정했다. 이 결정에서 그는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절부터 자신의 재위까지 전해졌다는 인구 조사 기록에 근거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 역시 추측과 가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성경을 참조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성경이 진실을 말해줄까?
어디에서보다도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단서를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복음서들은 이 주제를 다소 소홀히 다룬다. 마태오와 누가만 간략하게 언급할 뿐, 연간 날짜는커녕 일자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역사적 연구, 즉 헤로데의 '아기들 학살' 명령 시기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었을 때'(혹은 그 직전) 시행된 호적 조사의 시기 사이의 절충, 그리고 수수께끼의 별의 움직임 등을 근거로 삼으면, 탄생 시기는 기원전 8~5년으로 추정되며 특히 기원전 7년설에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계절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목자들이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묘사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복음에는 "그 고장에는 밖에서 목자들이 밤을 새워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눅 2:8)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겨울에 실제로 들에서 양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
겨울이면 춥기 마련이다
성서 학자들이 강조하듯, 팔레스티나에서는 11월부터 3월까지 겨울철이 이어지며 집중 호우와 강한 냉기, 심지어 서리(특히 밤에)가 내린다. 이 시기 목자들은 기온이 너무 낮아 들에서 양 떼를 지키며 머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실은 탈무드의 언급으로도 뒷받침된다. 탈무드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3월에 가축을 목장으로 내모는 반면, 11월 초에는 다시 우리로 돌려 보낸다. 따라서 더욱이 12월의 팔레스티나에서는 가축과 목자 모두 외양간에 머물렀을 것이다. 결국 복음서의 서술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겨울 이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그 날짜로 10월 7일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편 복음사가 마르코와 요한은 구세주의 탄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이미 성인이 된 예수의 세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모든 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집중하는데, 그 죽음이 참된 삶, 즉 영원한 생명의 시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기독교인들은 생일과 그 축하 행위에 대해 적어도 무관심했으며, 때로는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잔치 없는 생일
초기 기독교 작가들의 글에는 생일 축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일부는 로마인들의 생일 축하를 조롱하며 그 이교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생일 축하를 이교적 관습으로 여겼다.
덧붙이자면, 기원 후 처음 몇 세기 동안 박해받던 기독교 소수자들은 로마의 공공 종교 의식, 축일, 제사, 그리고 각종 경기와 오락으로부터 강하게 거리를 두었다. 이러한 상황은 서기 303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시작한 잔혹한 기독교 박해가 끝날 때까지 지속된 듯하다.
따라서 오늘날 성탄절이 기독교 달력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 중 하나로 자리 잡았음에도, 그것이 비교적 늦게부터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축하받을 거룩한 날
탄생일 연구와 함께 성탄 축일의 시작 시점에 대한 탐구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축일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275)가 12월 25일에 기념되던 '무적 태양의 탄생일'을 제국 최중요 공휴일로 격상시킨 데 대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기독교인들의 동지 선택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
또 다른 이들은 성탄절의 제정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제국 권력 다툼 승리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최근에는 예수가 태어난 바로 그곳, 베들레헴에서 축일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르면 328년, 즉 성탄 대성당이 봉헌된 해부터 축일이 지켜졌다고 한다.
결국 여러 정황상 축일은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약 300년 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복음사가들은 탄생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게다가 고대에는 여러 연대 체계가 공존했다. 이 모든 것이 연구를 어렵게 만들며, 정성껏 계산된 갓난아기의 출생 연도조차 불확실하게 만들고, 특정 일자는 완전히 가능성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참고 문헌
- Biblia Tysiąclecia Online, Poznań 2003.
- Daniel-Rops H., 『그리스도 시대 팔레스티나의 일상생활』, J. Lasocka 옮김, Warszawa 2001.
- Kasabuła T.,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태어났는가』.
- McGowan A., 『How December 25 Became Christmas』,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 Mrygoń J., 『21세기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십자가 날을 알 수 있는가?』.
- Naumowicz J., 『성탄절의 탄생』, Kraków 2016.
- Wolicki A., 『그리스도는 정말 언제 태어났는가』, Newsweek Hist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