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7월 4일,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피터 와인버거가 집 앞 테라스에 놓인 유모차에서 사라졌습니다. 납치범은 몸값 2,000달러를 요구했지만, 정작 돈을 찾으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신생아가 가족의 롱아일랜드 자택 테라스에서 납치당한 이 사건은 미국 전체를 경악에 빠뜨렸습니다. 한 달 된 아기의 유괴는 곧바로 '세기의 범죄'라 불렸고, 그가 어떤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한 달이 넘게 지난 후에야 밝혀졌습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비극
피터 와인버거는 1956년 6월 초에 태어났습니다. 7월 4일, 아이가 겨우 한 달이 되던 날 어머니 베티는 아기를 담요로 감싸 집 테라스에 세워둔 유모차에 눕혔습니다. 아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그녀는 약 10분간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무도 비극을 예감하지 못했습니다.
와인버거 가족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조용한 마을 웨스트버리에 살며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1932년 3월 1일 아들을 몸값 노리고 납치당했던 린버그 가문처럼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납치당할 당시 피터 와인버거는 한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테라스로 나온 베티는 텅 빈 유모차를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황황해진 그녀는 아기를 데려간 사람이 몸값 쪽지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와인버거 가족은 아이를 되찾기 위해 단돈 2,000달러만 내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 사건에서 가장 기묘한 대목은 아니었습니다.
사과하는 납치범
베티가 유모차에서 발견한 손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주목! 이런 일까지 벌어져 미안하다. 나는 돈이 절실하고 다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나는 무섭고, 너희가 잘못 행동하면 아기를 죽일 것이다. 2,000달러를 소액권으로 넣은 갈색 봉투만 준비해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아기를 무사히 돌려주겠다. 몸값을 두는 바로 그 장소에 정오에 가져다두겠다. 핑계는 용서하지 않는다. 조급히 기다린다. 너희의 보모로부터.
납치범은 와인버거 가족에게 돈 봉투를 집 근처 이정표 옆에 늦어도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놓아두라고 요구했습니다.

몸값 요구 쪽지와 납치범 특정에 사용된 문서
피터의 아버지 모리스가 두 살 위 형 루이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와인버거 부부는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프랭크 아브라모위츠 형사는 부모에게 몸값 지불에 동의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부부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지만 재정 능력을 초과하는 돈을 마련했습니다. 경찰은 납치범이 연락해 올 경우에 대비해 와인버거 가의 전화를 도청했습니다. 또한 피터의 안전을 위해 언론이 납치 소식을 공개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언론의 실수
대부분의 언론사는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한 곳은 예외였습니다. 뉴욕 데일리 뉴스(New York Daily News)는 7월 4일자 석간 1면에 신생아 납치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사건은 즉시 크게 알려졌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와인버거 저택 주변은 기자들로 붐볐습니다. 그러나 납치범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인근에 운집한 군중이 겁을 줬는지, 그는 몸값 수령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며칠간 침묵을 지키던 그는 7월 10일, 납치 6일째 되는 날 와인버거 가에 두 차례 전화를 걸어 돈을 둘 장소에 대한 추가 지시를 남겼습니다. 베티와 모리스가 그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음에도 그는 다시 몸값을 찾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그가 지정한 두 번째 장소에서 경찰은 첫 번째 편지와 같은 필체로 쓰인 또 다른 손편지가 든 파란 가방을 발견했습니다. 납치범은 요구 사항을 재확인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부모가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밝혔습니다.
FBI의 개입
FBI가 사건을 인수하기까지 하루가 더 걸렸습니다. 당시 법률은 연방 수사관이 납치 사건에 개입하기 전 7일의 대기 기간을 요구했습니다. 수사관들이 확보한 것은 몸값 요구 쪽지 두 장뿐이었고, 필적 분석 결과 두 쪽지가 같은 사람의 것임이 확인되었을 뿐 더 이상의 증거는 없었습니다.

납치범은 앤절로 라마르카로 밝혀졌습니다
납치범을 특정하기 위해 워싱턴 FBI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뉴욕 수사관들에게 필적 분석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이후 형사들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해 뉴욕주 차량 관리국, 연방 및 주 보호관찰 사무소, 학교 등 여러 기관에 보관된 방대한 필적 샘플을 조사해야 했습니다. 거의 200만 건(!)에 달하는 문서를 검토하고 제외한 끝에, 8월 22일 — 납치 발생 거의 두 달 만에 — 마침내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한 수사관이 쪽지의 필적과 앤절로 라마르카(Angelo LaMarca)라는 남자의 필적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수사의 돌파구가 마련되기 전, 와인버거 부부는 불행을 틈타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로부터 몇 건의 추가 몸값 요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사건과 무관한 다섯 명이 체포되었고, 1956년 8월 23일의 여섯 번째 체포만이 진짜 범인이었습니다.
라마르카는 처음에 아기 피터 납치에 연루된 사실을 부인했지만, 필적 감정 결과와 마주하자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갚을 수 없는 빚에 허덕이던 그는 '충동적으로' 아기를 납치했다고 합니다. 그는 택시 배차원이자 운전기사로 일했으며, 부양해야 할 아내와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7월 4일, 그는 돈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하며 웨스트버리를 배회하다가 베티가 신생아를 유모차에 눕히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몸값 쪽지를 써서 테라스에서 아기를 데려간 뒤 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수색의 비극적 결말
그는 경찰에게 피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았고, 정말로 아기를 부모에게 무사히 돌려주고 싶었다고 확언했습니다. 납치 다음 날 아기를 차에 태운 채 몸값 수령 장소에 도착했지만, 인근에 운집한 기자들과 경찰을 보고 겁에 질려 차를 몰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 자신의 말로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골칫거리를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신생아를 근처 고속도로 출구 인근 숲속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기를 나무 사이에 두었을 때 아이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왜 피터를 납치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집에 냉장고와 새 창문을 사느라 빚을 졌고, 자동차 대금도 연체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피터의 시신 발견을 보도한 기사
경찰과 FBI 수사관들은 즉시 그가 지목한 지역 수색에 나섰습니다. 8월 24일 아침, 수색팀의 한 명이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신생아의 기저귀를 고정하는 데 사용했던 안전핀이었습니다. 아이의 시신은 이미 부패한 상태였지만, 검시관은 사인이 굶주림과 산소 부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법의학자는 나중에 고통이 길었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숲속에 버려진 아이는 며칠 더 살아 있었을 수 있습니다.
죄와 응징
앤절로 라마르카는 납치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의 변호사는 피터를 납치할 때와 아기를 숲에 버릴 때 그가 일시적 심신상실 상태였음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1956년 12월 7일 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배심원단은 납치범의 정신 이상 주장을 믿지 않았고, 제기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뉴욕주에서 살인죄의 형량은 사형이었고, 판사는 다음 해 1월 28일 형 집행일을 정했습니다.
라마르카는 형에 대해 여러 차례 항소했습니다. 그의 아내 도나(Donna)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남편이 죽게 될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미친 사람을 전기 의자에 보낼 수 있나요? 아버지인 사람은 미쳤지 않는 한 다른 아이가 죽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결국 앤절로는 1958년 8월 7일 싱싱(Sing Sing) 교도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피터 와인버거 사건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32년 린버그 아기 납치 사건 이후 도입된 규정의 변경을 강제했습니다. 해당 규정은 납치 발생 7일 후에야 FBI 수사관이 수색에 합류할 수 있게 했는데, 롱아일랜드 영아의 죽음 이후 연방 기관의 개입 대기 시간은 24시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사실 이 법이 1956년 7월에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해도 아기 피터는 구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제도 변화는 1998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참고 자료:
- S. Ruesch, Crime of the Century: The Kidnapping of Peter Weinberger, HeinOnline (2022년 3월 20일 확인).
- Weinberger Kidnapping, FBI.gov (2022년 3월 20일 확인).
- Weinberger Kidnapping Is Confessed by L.I. Man, "The New York Times" 특별 통신, 1956년 8월 24일 (2022년 3월 20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