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와 절름발이 사이의 전쟁. 그리고 폴란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적 승리 중 하나로 이어진 수모의 나날들. 초대 국왕 볼레스와프는 어떻게 부그 강에서 벌어진 결정적인 대결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1018년 7월 22일, 볼레스와프(Bolesław)의 군대가 부그(Bug) 강변에 도열했습니다. '흐로브리(Chrobry)', 즉 '용맹한 자'라 불린 그는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기사단을 이끌고 루테니아(Ruthenia)로 진격하고 있었으며, 독일 기사 300명과 마자르(Magyar) 전사 500명의 지원도 받고 있었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야로슬라프(Yarosław) 공이 군대를 이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폴란드의 통치자는 진영을 설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양측 병사들은 서로를 조롱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두 지도자의 외모는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야로슬라프는 다리를 절었고, 볼레스와프는 살이 찌기까지 해 말에 올라타는 것조차 힘겨워했습니다. 그래서 둘 다 완벽한 조롱거리였습니다.
피로 씻어야 할 모욕
루스의 공작은 이런 소란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쩌면 익숙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평화롭게 낚시를 즐겼습니다. 반면 폴란드의 통치자는 달랐습니다. 몇 달 전 사랑하는 아내 엠닐다(Emnilda)를 잃은 뒤 무기력에 빠져 있던 그에게, 이 모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돼지 같은 놈!" — 루테니아 전사들이 아마 이렇게 고함을 질렀을 것입니다.

키예프 원정 당시 볼레스와프 흐로브리와 그의 기사단. 카롤 스토비에츠키(Karol Stobiecki) 드로잉.
강가의 고함에 이끌려 야로슬라프의 보이보드(군사령관)인 늙은 부다(Buda)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네 그 살진 배를 내 창으로 꿰뚫어 주마." 그는 폴란드 공작을 보며 위협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볼레스와프는 자신의 전사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모욕이 여러분의 명예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나 혼자 죽으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부그 강 반대편에서 웃음소리가 터지는 가운데, 그는 힘겹게 말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여울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 순간, 뚱뚱한 육체 어딘가에서 수천 명을 떨게 하던 전사가 깨어났습니다. 몇 분 후, 그는 분노에 불타는 눈빛과 손에 든 검을 쥔 채 강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폴란드 공작을 따라온 자기 편 전사들을 본 야로슬라프의 병사들은 더 이상 즐거워할 수 없었습니다. 놀란 루테니아인들과 바이킹들은 황급히 검, 도끼, 방패, 활을 찾았지만, 한때 영광에 대한 갈망을 되살린 공작이 이끄는 폴란드군이 승리했습니다.
저녁 무렵, 부그 강의 루스 쪽 기슭은 시체로 덮여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유일한 길은 시체를 밟고 피로 신발을 적시는 것뿐이었습니다. 보이보드 부다는 전사했고, 야로슬라프 공은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완벽한 복수
이후 3주 동안 독일인과 헝가리인의 지원을 받은 폴란드군은 성 하나를 이어 도시 하나를 점령하며 키예프 성벽 앞까지 진격했습니다. 그곳에는 유목민 페체네그(Pecheneg)족 전사 1,000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볼레스와프와 동맹을 맺은 이들은 한동안 도시를 포위하며 화살을 쏟아붓고 목조 건물에 불을 지르려 했습니다.

개선하여 키예프에 입성하는 볼레스와프 흐로브리. 콘스탄티 구르스키(Konstanty Górski) 회화.
루테니아 수도의 주민들은 이방 유목민들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용감하게 지켜냈습니다. 그들에게 페체네그족에 대한 저항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비아토폴크(Światopełek)의 등장은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브와디미르(Włodzimierz) 대공의 아들들 간의 권력 다툼에 대해 키예프 시민들은 누가 이기든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노공이 죽은 후에는 스비아토폴크가 다스렸고, 이후에는 야로슬라프가 다스렸으며, 삶은 늘 그렇듯 흘러갔습니다. 그렇다면 왜 더 저항해야 하는가?
1018년 8월 14일, 키예프의 성문이 열렸고 폴란드 공작과 그의 사위가 도성에 입성했습니다. 그들의 개선 행진은 노래와 환호로 가득했습니다. 억지로 짜낸 환호가 아니었습니다. 포위전이 끝나고 전쟁의 시간이 저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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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스와프 흐로브리의 다른 화려한 정복 이야기는 책 『권력의 탄생(The Birth of Powe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