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의 역사 속 특별한 존재, 유대인
인종주의와 차별의 문제에서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외모와 문화적 차이가 크지만, 모든 유대인은 신앙과 그에 딸린 전통 관습으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생물학이 아니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인종적·민족적 사실이 아닌 문화적·종교적 사실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유대인의 기원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는 명칭은 후대의 유다 지파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기원은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3천 년 전부터 이미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했다는 흔적이 있으며, 일신교인 유대교는 기원전 마지막 천년기 후반에 이곳에서 발전했습니다.
디아스포라(세계 각지로의 흩어짐)는 기원전 586년 제1성전 파괴 이후 바빌론으로 끌려간 추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상업에 능한 민족답게 유대인들은 헬레니즘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제2성전이 파괴되자 예루살렘의 유대인 주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일부만이 팔레스타인에 남았습니다.
'순수한 혈통'을 지키려던 노력
구약 성서 에즈라서에 따르면,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을 '결백하게' 유지하는 데 매우 집착했습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가 정복된 뒤 5만 명의 유대인 포로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부족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이방인 출신 아내들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들을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입증되어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모든 유대인이 같은 혈통임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단서도 있습니다. 아버지 쪽, 즉 Y 염색체를 통해 대물림되는 유전자 표지에 대한 DNA 연구에서 나온 것이 바로 코헨 모달 하플로타입(Cohen Modal Haplotype)입니다. 이 하플로타입은 Y 염색체의 소위 '비암호화 영역'에 위치하며, 3,300년 넘게 유대인 사제 계급, 즉 모든 남성 코헨에게 전승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최초의 대사제 '코헨', 곧 모세의 형인 아론의 후손으로, 훗날 세파르드계와 아슈케나지계로 갈라지기 이전의 혈통입니다. 오늘날 아론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코하님(Kohanim)' 중 80% 이상에게서 이 하플로타입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른바 '순수한 혈통'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유대인부터 매우 검은 피부의 에티오피아 유대인까지, 외모의 편차가 워낙 큽니다. 이러한 큰 민족적 다양성은 비유대인과의 통혼 외에도, 로마 제국 초기 무렵 대규모 유대교 개종이 있었다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개종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금지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또한 8세기에 유대교로 개종한 강력한 튀르크계 초원 민족 하자르의 엘리트가 유대인의 조상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평화로운 공존과 배척의 역사
나치의 유대인 말살에는 인종 이데올로기와 반유대주의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반유대주의의 표현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유대인은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았고, 토지 소유가 제한되었으며, 길드에 가입할 수 없었고, 게토(유대인 격리 구역)에 살아야 했으며, 잘못을 저질렀을 때 타인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고 비난했고, 종교개혁자 루터도 말년에는 유대인을 적대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이자를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금융업을 담당했습니다. 그 덕분에 부자가 되었고, 이는 질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페스트 같은 대유행병 때 유대인들이 종종 죽음을 면한 것도 박해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보면 이는 엄격한 정결법 때문이었지만, 기독교인들은 이를 악마와의 계약 탓으로 돌렸습니다.
네덜란드, 평화로운 공존의 땅
수 세기의 평화로운 공존 끝에, 유대인들은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포르투갈에서도 쫓겨났습니다. 대체로 부유했던 세파르드계 유대인들은 안트베르펜을 거쳐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검소한 칼뱅주의자들 사이에서 화려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17세기 초 러시아 차르들이 폭력적인 포그롬(유대인 학살)을 자행하자, 중부·동부 유럽의 가난한 아슈케나지 유대인들도 관용적인 네덜란드 연합 공화국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다른 지역에서처럼 게토에 갇혀 사는 일이 없었습니다. 렘브란트는 한동안 암스테르담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살았으며, 그의 명작 유대인 신부가 바로 그 시절 작품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고, 여러 곳에 회당이 세워졌으며, 모두 230곳의 유대인 묘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시민권 박탈과 나치의 인종법
19세기에 이르러 나치는 기존의 반유대주의에 소위 '생물학적' 동기를 더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을 기생 인종으로 규정했습니다. 사실 유대인에게는 이전부터 표식 착용이 강요되어 왔습니다. 중세의 유대인 모자, 15세기 이후 옷에 달아야 했던 노란 유대인 반지가 그 예이며, 나치 시대에는 노란 다윗의 별 착용이 의무화되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은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했고, 누가 유대인인지 판단하는 방대한 기준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는 유대교 율법의 모계 혈통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유대 종교법상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만 그 사람이 유대인이 됩니다. 정통파 기준으로 '아버지가 유대인'인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지만, 광범위한 뉘른베르크 법 때문에 이들 역시 홀로코스트의 참화를 똑같이 당했습니다.
유대인 정체성, 문화와 종교의 실체
부모 혈통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열망이 과학적 객관성과 충돌하는 것입니다. 외모와 문화적 차이가 크지만, 모든 유대인은 신앙과 그에 딸린 전통 관습으로 묶여 있습니다. 예컨대 회당 안의 남녀 구역 분리, 갓난아기 할례(에티오피아 유대인은 여자아이도 할례함), 토라의 코셔 음식 규정 등이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규정 외에도, 우유와 고기용 주방 도구를 철저히 구분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엄격한 정통파 유대인들은 추가적인 규칙을 지킵니다. 예를 들어 새로 결혼한 여성은 혼인 첫날밤에 머리를 깎고 이후 가발을 써야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생물학이 아닙니다. 이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인종적·민족적 실체가 아닌 문화적·종교적 실체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