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00년 전, 인류 최초의 그림이 발견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붉은 선들이 그려진 돌 조각이 발견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교차하는 선들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명백히 의도된 것이다. 이로써 이 7만 3천 년 된 그림은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손으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역대 최고(最古)의 그림 발견." 이러한 주장은 종종 뉴스에 등장하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대의 연구 기술은 안료가 사용된 시기나 새겨진 흠집의 나이를 점점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 주며, 그것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인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는 호모 사피엔스의 손으로 그려진 경우다. 이들은 돌 조각 위에 '오커(ocher)'라는 광물로 선을 그렸다. 오커는 철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붉은색을 띤다. 이 돌은 1991년부터 발굴 작업이 진행되어 온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해안의 블롬보스 동굴에서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오커가 사용되었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유물들을 찾아낸 바 있다.
과학적 검증 과정
새겨진 선들은 돌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생긴 흔적일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도마처럼 사용했다면 칼자국이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오커로 된 선들은 부산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여러 실험을 수행했다. 오커를 다양한 형태의 필기구와 물감으로 만들어 돌 위에 이런 선을 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실험 결과, 오커를 연필 형태로 사용해 매끈하게 갈린 돌 표면에 그렸을 때만 원본과 동일한 선이 만들어졌다. 또한 옛 돌에서 관찰되는 특유의 교차 각도는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돌을 회전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과학자들은 현미경 및 화학 분석을 통한 안료 연구를 진행했고, 붉은 물질이 실제로 오커임을 확인했다. 국립고고박물관 선사시대 큐레이터인 루크 암크로이츠(Luc Amkreutz)는 이번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철분(Fe)이 풍부한 적색 오커의 화학 조성은 쉽게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해당 지역에서 이미 여러 차례 유사한 유물이 발견된 바 있어, 적색 오커의 사용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라는 정황을 더욱 뒷받침합니다."
조사 과정에서 또 하나 드러난 사실은, 이 그림이 그려진 돌 조각이 원래 더 큰 전체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선들이 마치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원래는 지금은 사라진 돌 위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발견 당시 아프리카 전문 고고학자로 활동했던 라이덴 대학교의 게릿 뒈설도르프(Gerrit Dusseldorp)는 "지금은 그림이 불완전해 보일 수 있지만, 말하자면 원작의 파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가장 오래된 추상 미술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해시태그(#)와 비슷해 보이는 직선들은 분명 의도된 것이지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선들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이 그림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추상 미술일까? 호모 사피엔스는 7만 3천 년 전에는 구상 미술을 만들 수 없었던 걸까? 4만 년 전부터 동굴 벽에 손도장이나 동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연구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암크로이츠는 "구상적인 동굴 벽화가 왜 만들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추상적인 형태를 해석하기란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조각 형태의 추상적 표현이 54만 년 동안 우리 '예술적' 표현의 스펙트럼 안에 존재해 왔다는 점입니다. 54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이미 민물담치 껍데기에 선을 그렸습니다. 해시태그, 선, 점, 지그재그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즐겨 하는 행위입니다"라고 말했다.
시대를 앞선 상징성
분명한 사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롬보스 동굴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이 시대를 크게 앞서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10만 년 전부터 7만 3천 년 전 사이에 붉은 오커를 물감으로 사용했으며, 돌과 뼈로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작은 바다달팽이 껍데기로 구슬 장식을 만들었다. 뒈설도르프에 따르면, 수천 년에 걸쳐 반복된 이러한 행동에 대한 가장 타당한 설명은 바로 '상징성'이다.
그는 "이는 해부학적으로나 유전적으로 우리와 구별할 수 없는 집단에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는 30만 년 전부터 우리와 같은 현대인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스마트폰을 다루고, 운전하는 데에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적응할 것입니다. 7만 3천 년 전이 아무리 먼 과거처럼 느껴져도, 진화의 시간 척도로 보면 사실상 한순간에 불과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본보기가 되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의 그림
흥미롭게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외 지역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수만 년 후의 일이다. 프랑스 샤베 동굴의 유명한 벽화들은 3만 1천 년 전의 것이다. 앞으로 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그림 기법을 함께 가져갔는지, 아니면 그곳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답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네안데르탈인과의 직접적인 상호 영향 관계는 없어 보인다.
이번 연구의 아프리카 돌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기록되었던 것은 6만 4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의 네안데르탈인 동굴 벽화였다. 암크로이츠는 "근동 지방에서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혼혈이 있긴 했지만, 스페인은 너무 고립되어 있어 현생 인류와 공존하며 교류하는 지역이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연대 측정이 정확하다면 스페인의 동굴 벽화는 현생 인류의 영향권 밖에서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종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뒈설도르프는 "지브롤터에서 최근 발견된 해시태그 모양의 그림 역시 네안데르탈인이 그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그림 발견을 네안데르탈인과 무관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그것이 '멍청한 원시인'이라는 기존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였습니다. 게다가 3만 년 이상 전 프랑스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이미지 대부분도 사실 선과 지그재그입니다. 동물 그림처럼 눈길을 끄는 작품들만 골라 커피테이블북에 실을 뿐입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