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최근까지 학부 과정을 밟던 요페 반 드릴(Joppe van Driel)은 졸업 논문 『과학의 문제를 밝히며: 장 드 카스티용(1709~1791)의 반물질주의적 계몽 철학』에 무려 1년 가까이를 투자했다. 그 결과물은 인상적이다. 저명한 역사가들의 학설에 망설임 없이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는 150페이지 분량의 연구 보고서다. 그는 이 논문으로 네덜란드 국제사회사연구소(IISH)와 일간지 폭스크란트가 공동 주관하는 역사학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계몽주의를 나눈 두 진영
영국의 역사가 조나단 이스라엘(Jonathan Israel)은 2001년 계몽주의 시대에 두 개의 진영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한쪽에는 보수적인 계몽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과학적 방법을 신중하게 실험하면서도 언제나 신에 대한 믿음의 자리를 남겨두었다.
반면 이스라엘이 여기에 대비시킨 것은 급진 계몽주의다. 이 운동의 대표자들은 세계를 오직 물질과 운동만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 관점에는 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교회의 종교적 교리에 홀로 맞선 소수 정예 과학자 집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저서 『급진 계몽주의: 철학과 근대의 형성』(2001)에서 네덜란드 계몽주의를 명시적으로 다루었지만, 급진과 보수라는 그의 구분은 유럽 계몽주의 전반을 설명하는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는 필립 블롬(Philip Blom) 등의 후속 연구 덕분이기도 하다. 블롬은 『타락한 공동체: 잊혀진 유럽 계몽주의의 급진성』(2010)에서 바론 돌바흐와 백과전서파 드니 디드로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을 무신론의 고독한 옹호자로 지목했다. 신에 대한 완전한 거부야말로 자연에 관한 새로운 사유에서 도출되는 유일한 논리적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계몽주의의 방대한 사상적 풍요로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반 드릴은 주장한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계몽 사상가 장 드 카스티용(1709~1791)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내세운다. 카스티용은 폭넓은 지적 배경을 갖추고 국제적인 경력을 쌓았으며, 과학과 물질주의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인물이었다. 반 드릴은 이런 점 때문에 카스티용이 사례 연구 대상으로 매우 적합했다고 말한다.
드문 무신론자들
한편으로 카스티용은 급진 계몽주의자의 이상형에 부합했다. 그는 단 하나의 통일된 과학적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신앙과 신적 계시를 위한 자리를 충분히 남겨두었다. 바로 이 겉보기에 상충하는 관점들이야말로 계몽주의의 본질적 특징이었다는 것이 반 드릴의 분석이다. 카스티용은 물질주의적 사유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반 드릴에 따르면 바로 이 비판이 계몽주의 사상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많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과학적 방법을 신학적 질문에 답하는 데 활용하고자 했다. 반 드릴은 "돌바흐처럼 진정한 무신론자는 계몽주의에서 오히려 드문 존재였다"고 말한다. 계몽주의는 인간과 과학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이 서로 부분적으로 겹치며 뒤섞인, 일종의 '지적 원초 수프(primordial soup)'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환원주의 비판자를 찾아서
이 주제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반 드릴은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과학사에서 환원주의, 즉 모든 종류의 질문이 하나의 근본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의 비판자들을 찾고 싶었습니다. 지금 딕 스와브(Dick Swaab)가 베스트셀러 『우리는 우리의 뇌이다』에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태도에 맞서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는 IISH/폭스크란트 논문상과 함께 받은 1,500유로의 상금도 잘 활용할 계획이다. "요즘 저는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엔스헤데를 자주 오갑니다. 현재 엔스헤데에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기차 안에서 작업할 수 있는 아이패드나 새 노트북이 아주 유용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