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팍스 로마나 시대, 고대 로마에서 꽃핀 관광의 황금기

고대에 여행하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동 수단은 불편했고, 도로 상태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도적의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전 사람들은 즐거움을 위해 길을 나섰고, 당시 그들이 찾았던 명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적인 관광지로 남아 있다.

여행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활동이다. 더 나은 농경지를 찾아서, 부유한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혹은 무역을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이동했지, 이웃 나라의 예술 보물을 감상하려고 떠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원 후 초입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광대한 로마 제국 전역에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강림하면서 여행이 한층 안전하고 쉬워진 것이다. 대략 기원전 30년부터 기원후 200년까지 이어진 이 평화의 시기에 로마 제국은 최대 판도에 도달했다. 국경은 북쪽으로는 네덜란드의 라인강에서 남쪽으로는 모로코 근처 사막까지, 동쪽으로는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에서 서쪽으로는 대서양까지 뻗어 있었다.

이 거대한 제국 안에는 국경이 없었고, 시민들은 자유로운 통행을 위해 어떤 서류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또한 방대하고 촘촘한 도로망이 제국 내 주요 도시들을 연결했다. 바다에서는 한층 더 번성하여 연안 항로가 폭넓게 이용되었다. 제국 화폐면 어디서든 지불할 수 있었고, 서부에서는 라틴어, 동부에서는 그리스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도 여행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교양 있는 시민이나 상인이라면 두 언어를 모두 구사했다.

육로로 갈까, 바닷길로 갈까

기원 후 비교적 태평했던 첫 몇 세기 동안 수많은 여행기가 집필되었다. 고대 여행자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읽어보면 흥미롭다. 우선 로마 황제조차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즉 바다의 폭풍이나 사막의 재앙 같은 것들이 있었다. 정부는 도로와 바다에서 범죄가 사라졌다고 선전했지만, 특히 외딴 지역에서는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위험에 더해 불편함도 당연히 따랐다. 로마인들이 약 8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방대한 도로망을 건설했지만, 그 품질이 모든 곳에서 균일하지는 않았다. 아직 현가장치가 없던 마차로 육로를 여행하는 이들은 저녁에 도착했을 때 온몸이 삐걱거릴 정도로 흔들려 있곤 했다. 도로변에는 여행자를 위한 작은 여관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여러 여행기에 따르면 이곳은 해충이 들끓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가능한 한 도중에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 머무는 것을 선호했다.

육로 여행의 장점은 원하는 때에 출발할 수 있고 자신만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중간에 머물 수 있는 여관이나 숙박 시설이 넘쳐났으니,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단점은 느린 여행 속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수레를 곁들여 걸어서 하루 약 6마일(1마일은 1475미터)을 이동했다. 마차를 이용한 이들은 하루 15킬로미터에서 최대 60킬로미터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장거리 여행자는 날씨 조건만 좋다면 훨씬 빠른 바다 항로를 선호했다. 배가 더 편안하고 값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운이 본래 화물 운송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여행자는 자신을 태워줄 선장을 찾아야 했다. 결국 자신의 일정을 배의 항로와 출항 시간에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배는 기상 상황에 좌우되었기 때문에 시간표에 따라 운항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다니는 일은 주로 날씨가 안정적인 여름철의 일이었다. 선장들은 계기 없이 태양과 별의 위치에 의존해 항해했기 때문에 올바른 항로를 설정하려면 맑은 하늘이 필수였다. 겨울철에는 짙은 구름, 안개, 돌비와 눈보라 때문에 이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실제로 11월부터 3월 사이의 해상 항해는 '마레 클라우숨(mare clausum)', 즉 '닫힌 바다'라 불리며 기피되었다. 로마 관광객들은 우리의 여름방학과 비슷하지만 더 긴, 주로 6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사이에 길을 나섰다. 그들은 무더운 도시를 피해 떠났고, 부유한 로마인들은 호화로운 시골 저택으로 향하거나 관광 여행을 즐겼다.

성가신 가이드들

팍스 로마나 시대에 여행이 늘어나면서 즐거움을 위한 여행, 즉 관광도 함께 성장했다. 교양 있는 로마 시민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 온 역사 이야기 때문에 그리스를 찾았다. 이 땅은 로마 문명의 근원지였고, 그들은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기념물, 신전, 무덤은 물론 신화 속 유물도 둘러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가 태어났다는 알이 대표적인 예다. 전시된 그 알은 아마도 아프리카산 타조알이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에 하이라이트, 즉 '필수 관람 명소'로 가득한 최초의 관광 코스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큰 인기를 누리는 아테네, 델포이, 올림피아, 스파르타 같은 도시들을 찾았다. 현지인들은 숙소, 음식, 기념품 가게, 그리고 관광객에게 억지로 다가서던 가이드 등 여전히 익숙한 형태의 서비스로 이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고객이 특정 서비스나 숙소 주인에게 불만을 갖게 되면, 돈을 내고 해당 업자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주는 납판에 새겨져 묘지에 묻혔다.

축제 분위기

기원전 776년부터 개최된 올림픽은 언제나 인기가 높았지만, 팍스 로마나 시기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몰리는 명소 중 하나였다.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열린 올림픽에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추정 4만 명의 관중이 모였다. 입장료는 무료였고, 온갖 계층의 관광객들이 이곳에 운집했다. 숙소는 한참 전부터 예약이 마감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고신 제우스 신전 주변에 자기 텐트를 치고 잤다. 낮에는 관중들이 뙤약볕 아래 맨 산비탈에 빼곡히 앉아 경기를 응원했다. 위생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참석자들 사이에 열병과 설사가 종종 돌기도 했다.

올림픽은 5일간 열렸는데, 첫날과 마지막 날은 종교 의식으로 채워졌고 나머지 3일은 경기에 할애되었다. 그러나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것 외에도 즐길 거리는 많았다. 관중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각종 대회, 예컨대 음식 대회나 미인 대회가 열렸다. 올림피아는 선수들 외에도 배우, 불꽃 먹기 공연자, 곡예사, 점쟁이 같은 예술인들을 대거 끌어모았다. 매춘부들은 장사가 잘 되었고, 작가들은 신작으로 데뷔했으며, 철학자들은 격론을 벌이러 왔다.

그리스 외에도 이집트는 로마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들은 케오프스의 피라미드를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따사로운 태양, 나일강의 물, 그리고 약효가 있다고 알려진 여인들 때문에 찾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반드시 혼자 여행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기획된 단체 여행도 있었다. 여행자들은 지붕이 덮인 4륜 마차인 '라에다(rhaeda)'에 탑승하고 짐은 열린 마차에 실었다. 아니면 수영장, 예술가의 공연, 셰프의 미식이 갖춰진 대형 호화 크루즈선을 타고 항해하기도 했다. 결국 관광의 세계에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그다지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