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핵무기 전면 금지 협정 표결을 앞두고
이번 달 유엔(UN)은 세계적 차원의 핵무기 금지 협정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다. 이를 앞두고 네덜란드 지부 국제의사핵전쟁방지기구(IPPNW)가 관련 회의를 개최했다. 겉보기에는 일반 시민들과 거리가 먼 주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네덜란드 영토 안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클린겐달 연구소의 시코 반 데르 메르(Sico van der Meer) 연구원은 "그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경고한다.
냉전의 부활
동서 진영 간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우리는 냉전(1945~1991)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당시 소수의 핵보유국들 사이에서 치열한 군비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핵비확산조약(NPT)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의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 핵보유국 수는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5개국에서 8개국으로 늘었다. 반 데르 메르는 "그 결과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오히려 커졌다"고 지적한다.
붉은 버튼의 공포
새롭게 핵보유국이 된 세 나라는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다.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 결행의 문턱은 상당히 높다"고 반 데르 메르는 설명한다. 그러나 새로운 핵보유국들은 결코 안정적인 국가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는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자주 발생하며, 양국이 핵무기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위협한다. 이들 국가에서 핵 사용의 문턱은 상당히 낮다. 특히 파키스탄은 군부대 하나를 괴롭히는 수준의 소규모 분쟁에서도 전술 핵무기 사용을 허용하는 군사 교리를 갖고 있어, 충돌이 쉽게 확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 지도자에 대해서도 그는 안심하지 않는다. "김정은 앞에 붉은 버튼이 놓여 있다는 상상은 정말 무섭다."
세계 핵무기 수는 냉전 시절 약 6만5000발에서 현재 1만5000발로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위험이 작아진 것은 아니다. 현재의 핵무기들은 훨씬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현대식 변형 모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폭탄은 이에 비하면 '작은 것'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은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핵 전력 현대화를 추진 중이며, 영국도 유사한 계획을 갖고 있다. 1만5000발이라는 수치는 핵물질 생산시설 규모 등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산출한 비교적 안정적인 추정치다. 다만 퇴역했더라도 미사일에 비교적 빠르게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들이 계속 저장되어 있어 정확한 산정은 어렵다.
또한 핵보유국이 8개국이라는 숫자 자체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도 핵탄두를 보유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반 데르 메르는 "학계는 한 나라가 스스로 핵보유를 입증했을 때 핵보유국으로 간주한다. 이스라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인도 확인도 하지 않았고, 공개적인 핵실험도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투명한 핵보유국과 불투명한 핵보유국
새로운 핵보유국들이 불안정하고 도화선이 짧다는 것은 물론이지만, 반 데르 메르는 '구(舊)' 핵보유국 5개국에 대해서도 별다른 믿음을 두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는 적의 핵미사일이 자국에 도달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경보 체계를 운영 중이다. "사람들이 화면에 표시된 정보만을 근거로 초 단위의 순간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핵무기 관련 사고는 여러 차례 발생했으며, 인류는 여러 번 간발의 차로 재앙을 피해 왔다. 미국은 각종 기록이 공개되어 있어 사고 사례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은 투명한 핵보유국이다. 러시아는 상황이 전혀 다르고, 아시아 국가들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테러 조직 또는 조직에 연루된 개인들까지 핵무기에 관심을 보여 왔다. 여기에 더해 반 데르 메르는 사이버 위협을 새로운 악몽으로 꼽는다. 어떤 국가나 조직이 타국의 핵무기 체계를 해킹으로 교란하는 것이다.
핵겨울이 가져올 참사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비핵보유국은 물론, 일반 시민들과 의사·법률가 등 전문직 집단들도 깊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198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IPPNW의 의사들은 현재 핵 전력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핵겨울'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핵겨울이란 폭발로 대기 중에 퍼진 검빛(soot)이 햇빛을 가리면서 지구 경제, 생태계, 식량 공급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현상이다. 광범위한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되면 구호 활동가들조차 인류의 고통을 막을 방법이 없다.
작은 발걸음뿐인 비핵화
그렇다면 핵무기 금지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반 데르 메르는 냉정한 전망을 내놓는다. "향후 어떤 조약이든 서명하는 것은 핵보유국이 아닌 나라들뿐일 것이며, NATO도 현재로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정치적 흐름이 호조가 아니다."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는 일본과 한국의 핵보유화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ISIS를 핵폭탄으로 폭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 핵실험 금지 조약 서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위기 당시 핵무기 사용을 언급했고, 지금 우리는 미·러 양 핵강국 간 긴장이 고조된 시리아 위기 한복판에 놓여 있다.
따라서 그는 단기간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최선의 시나리오라 해도 비축 감축은 작은 걸음부터 시작될 것이다. 네덜란드를 포함한 '주재국'에서 핵보유국의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부터가 그 출발점이다. 반 데르 메르는 "금지 협정은 좋은 신호가 될 수 있겠지만, 핵무기 없는 세계는 아직도 멀리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