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교회는 밖으로, 매음굴은 안으로 — 16세기 회화 속 '일상의 발견', 보스흐에서 브뤼겔까지

16세기 회화는 놀라운 변화를 겪습니다. 교회와 귀족이 더 이상 유일한 후원자가 아니게 되면서,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그림들이 탄생합니다. 새로운 구매자는 시민들이었고, 그들은 배설과 오줌 소재의 유머, 폭주하는 농민들, 매음굴 장면을 보며 웃었습니다.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이 이 혁명적인 회화의 발전을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거대한 천장을 가진 넓은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방 중앙으로 걸어가면 그 느낌은 사라집니다. 바로 이곳에 전시의 핵심 작품, 히에로니무스 보스흐(Jheronimus Bosch)의 『추수꾼(The Harvestman)』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삼폭화 좌우로는 공간을 나누는 칸막이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여기에 판화와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들은 정욕, 탐욕, 어리석음 같은 주제별로, 그리고 작가별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감한 시도

이번 전시의 최대 스타는 단연 히에로니무스 보스흐(약 1450~1516)와 피터 브뤼겔(대브뤼겔, 약 1526/1530~1569)입니다. 보스흐는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장르 주제의 초기 개척자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보스흐의 세계가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면, 동시대 사람들에 따르면 브뤼겔에게는 언제나 웃을 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1500년경까지 예술 작품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교회였고, 그 다음이 엘리트 계층이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에는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이, 부유한 이들의 궁전에는 그들의 초상화가 걸렸습니다. 일상생활 장면은 한 세기 동안 판화에는 등장해 왔지만, 대부분 춤을 추거나 카드 놀이를 하며 즐기는 귀족 부부의 모습이 고작이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흐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듯한 모습을 그린 최초의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농부, 하녀, 행상인, 병사, 창녀, 도둑, 돌팔이 의원들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보스흐 이후 루카스 판 레이던(Lucas van Leyden, 약 1494~1533), 퀸턴 마시스(Quinten Massijs, 약 1466~1530) 같은 유명 화가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루카스 판 레이던의 작품은 특히 연인 부부, 선술집 장면, 속임수에 넘어가는 바보들을 담은 판화가 많습니다. 반면 안트베르펜 출신 퀸턴 마시스에게서는 대형 회화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돈에 눈이 멀어 몰두하는 탐욕스러운 인물들을 조롱했습니다. 세리 관리인, 돈을 세는 사람 등을 캐리커처로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관객과의 상호작용

같은 주제의 회화와 판화 외에도 당시 시대의 물건들이 함께 전시됩니다. 예컨대 탐욕스러운 세리 관리인과 구두쇠들 옆에는 환전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새로운 예술 시대의 마지막 거성은 농민 잔치로 유명해진 피터 브뤼겔입니다. 이 화가들이 함께 16세기 미술에서 일상 묘사의 정점을 이룹니다.

그런데 왜 1500년 무렵부터 관심이 신성한 것에서 일상으로 옮겨갔을까요? 큐레이터 프리소 라메르츠(Friso Lammertse)는 이것이 종교개혁 이후 새로운 신앙의 부상, 즉 인간과 신·세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루카스 판 레이던이나 피터 브뤼겔 같은 화가들은 독창적이고 싶어 했고,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브뤼겔은 민족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를 다녀오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았고, 이탈리아 화가들과 차별화되기를 원했습니다. 화가들이 관람객을 의식하고 관람객의 기대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도 이때가 처음입니다. 좋은 예가 브뤼겔의 『농부와 새 둥지 털이』입니다. 이 작품에서 농부는 나무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둥지 털이를 비웃지만, 사실 농부 자신도 언제든 도랑에 빠질 수 있는 처지입니다. 이 행위는 정말로 관람객을 겨냥한 것입니다."

16세기 일상을 그린 화가들은 순박한 오락거리를 아낌없이 보여줍니다. 파티를 벌이는 농부들, 키를 맞추는 연인들, 배변과 오줌, 게워내는 모습까지. 라메르츠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바로 고정관념과 유머입니다. 이 그림들의 구매자는 시민들이었고, 그들은 거리를 두고 농부들이 파티, 술, 섹스, 싸움으로 흥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중세 이미지에서 보이는 열심히 일하는 농부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이 도덕적 교훈을 의도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100%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이 그림들의 주제에 관한 16세기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관람객을 향한 경종의 손가락이라기보다는 거울을 들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술을 많이 마신 것은 농부만이 아니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외국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시민들의 음주가 심해서 아내들이 모든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남편들은 늘 취해 있었으니까요."

배변과 오줌의 유머

하지만 무엇보다 유머가 이 그림과 판화의 핵심이며, 이것이 이전 시대의 예술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오줌을 누고, 변을 보고, 싸우고, 흥청거리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웃음거리였습니다. 철학자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의 짜증 섞인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취한 사도나 성서의 마르타가 그리스도에게 음란한 몸짓을 하는 것처럼 성인을 조롱하는 농담에 모두가 웃는 것을 몹시 분하게 여겼습니다. 다만 이러한 유머도 시간이 지나며 변합니다.

라메르츠는 "히에로니무스 보스흐 역시 수도사를 조롱했지만, 이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카니발처럼 수도사가 술을 마시거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리며 조롱하는 것은 그저 재미였습니다. 그러나 루터와 종교개혁(1517년 이후)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됩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수도사는 정치적 함의를 띠게 되고, 곧바로 교회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여집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순수한 재미와 유머만을 위한 수도사 조롱은 그 세기 말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천진한 유머는 여전히 통했습니다. 갑자기 알몸 엉덩이와 마주치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아주 웃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후원자인 도시 시민들이 즐긴 것은 타인을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신들과 거리가 먼 사람들, 즉 농부, 거지, 그리고 사랑에 빠진 우둔하고 늙은 사람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시민들이 그림에 등장할 때조차 마시스의 돈 세는 사람들처럼 캐리커처로 그려졌습니다. 이것이 캐리커처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인물들은 여드름과 큰 코를 가진 못생긴 얼굴에 그치지 않고, 유행을 따르는 16세기 시민과 거리감을 만들기 위해 늘 중세풍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판화, 유행을 이끌다

결국 이번 전시는 히에로니무스 보스흐 이후 회화의 주제에서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고정관념화된 인물들은 시민들이 결여했다고 여겨지는 특성을 드러내며 웃음거리가 되지만, 동시에 도시 주민들에게 규범을 확인시켜주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이 장르 예술은 훗날 황금시대의 세계적 화가들을 키워낸 요람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판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판화야말로 주제의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과 대중화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루카스 판 레이던의 인기 판화들은 금세 널리 복제되고 모방되었습니다. 이런 판화들이 일상적 소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일조했습니다.

작품의 크기도 커집니다. 농민 생활을 담은 작은 그림에서 시작해, 세기 중반 피터 아르트선(Pieter Aertsen)의 실물보다 크고 눈에 띄게 그려진 농부와 하녀들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처음으로 이 규모에서 관람객을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은 귀족이나 성직자가 아니라 평범하고 익명의 남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