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앤디 워홀 '스크린 테스트',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다시 공개되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앤디 워홀이 1964년 초부터 1966년까지 촬영한 '스크린 테스트(Screen Tests)'가 다시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영화 속에서 자신의 얼굴과 개성을 드러내며 셀러브리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연작은 오늘날 소셜 미디어 시대의 선구자라고 불릴 만합니다.

타임스퀘어에서 런던 배비컨까지

2015년 5월에는 뉴요커들이 매일 밤 11시 57분, 타임스퀘어의 전자 광고판에서 워홀의 스크린 테스트 일부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런던 배비컨(Barbican)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음악과 함께 엄선된 작품들이 상영되었습니다.

'지명수배 전단'에서 시작된 영감

이 프로젝트의 기원은 196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워홀은 뉴욕 경찰국(NYPD)이 내건 '13대 지명수배범(Thirteen Most Wanted Men)' 얼굴이 담긴 전단지를 접하게 되고, 자신만의 '초상화' 시리즈를 13인 단위로 제작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이 구상은 당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을 몇 분 분량의 짧은 필름에 담아낸 '살아 있는 초상(living portrait)' 연작으로 발전했고, 1965년 말부터는 '스크린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

다만 이 명칭은 사실 적절하지 않습니다. '스크린 테스트'라는 용어는 1917년 영화 산업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카메라 앞에서 역할을 연기할 능력을 시험하는 오디션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장편 영화를 제작한 워홀은 자신의 스크린 테스트를 오디션 용도로 활용한 적이 없습니다.

팩토리를 찾은 사람들

워홀의 스튜디오 '팩토리(The Factory)'를 방문한 많은 이들은 스크린 테스트 출연을 제안받았습니다. 앤디는 팩토리를 거치는 가장 유명한 인사들의 참여를 바랐고, 카메라는 언제나 자원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그 제안을 영광으로 여겼지만, 앤디는 가까운 지인, 친구, 연인, 파트너의 모습 또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완성된 스크린 테스트는 472편으로 추산되며, 여러 번 촬영된 인물이 있는 관계로 실제 등장 인물은 189명입니다.

반세기 만에 깨진 '공백기'

1970년, 워홀은 자신의 필름 작품에 대한 공개 상영 허가를 중단했습니다. 그 결과 밥 딜런, 루 리드, 니코, 에디 세즈윅,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샹 등 가장 유명한 스크린 테스트들은 반세기 동안 인간의 눈에 닿지 못했습니다. 런던에서의 상영으로 이 긴 '공백기'는 막을 내렸으며, 이 작품들은 한 번쯤 들러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밥 딜런, 두 번의 촬영과 소파로 바뀐 엘비스

밥 딜런은 1966년 두 차례 스크린 테스트에 응해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팩토리를 방문한 딜런은 워홀의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았고, 롱샷용과 클로즈업용 두 개의 필름 릴이 준비된 가운데 두 번의 촬영에 나섰습니다. 촬영 후 앤디는 자신이 그린 엘비스 프레슬리 초상화를 선물했고, 딜런은 이를 받아들였다가 훗날 그 작품을 소파와 맞바꿨다고 전해집니다.

루 리드와 벨벳 언더그라운드

루 리드와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은 1965년 워홀을 만났고, 앤디는 곧 그들의 매니저이자 첫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and Nico'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촬영된 스크린 테스트 일부는 워홀이 기획한 멀티미디어 이벤트 '익스플로딩 플래스틱 이너비터블(Exploding Plastic Inevitable)'에서 공개되었는데, 이 행사에는 라이브 음악, 정지 및 동영상 프로젝션, 댄스 퍼포먼스, 조명과 무대 장치 실험이 어우러졌습니다.

니코, 열한 번의 카메라 앞에서

니코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목소리였습니다. 워홀은 그녀를 밴드에 소개하고 함께 작업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니코는 11번의 스크린 테스트에 응했으며, 폴 모리시(Paul Morrissey)는 그중 ST238을 니코의 최고의 이미지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에디 세즈윅과 '워홀 슈퍼스타'

워홀의 관심은 이미 이름을 알린 예술가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사람들을 셀러브리티로 바꾸는 일에 깊은 흥미를 느꼈고, 이렇게 탄생한 인물들은 훗날 '워홀 슈퍼스타(Warhol Superstar)'로 불렸습니다. 가장 유명한 워홀 슈퍼스타는 한 시대를 통째로 풍미한 에디 세즈윅입니다. 워홀은 1965년 3월 그녀를 처음 만났고, 에디는 같은 해 그녀의 아파트 안에서 촬영된 '가난한 부잣집 딸(Poor Little Rich Girl)'을 비롯한 여러 워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거꾸로 비친 얼굴

앤디 워홀은 뉴욕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살바도르 달리를 처음 만났고, 그 경험은 그를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달리는 두 번의 스크린 테스트에 응했는데, 하나에서는 카메라가 그를 거꾸로 담았고, 다른 하나에서는 테이프 중간에 그가 화면에서 사라집니다. 워홀의 달리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66년 앤디는 달리가 팩토리를 방문한 모습을 담은 35분 분량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마르셀 뒤샹과의 예술적 교류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은 서로의 작품을 깊이 존경했습니다. 워홀은 뒤샹의 작품 20점 이상을 소유했으며, 1966년 2월 뒤샹은 워홀에게 체스를 주제로 한 전시회에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앤디는 참여 여부를 회신해야 할 연락처가 적힌 메모를 잃어버렸지만, 결국 전시회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고 그곳에서 뒤샹과 함께 스크린 테스트를 촬영했습니다. 이는 팩토리 밖에서 진행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