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아다 시퓰 피셔는 무엇을 한 사람일까? 민권운동가의 삶과 업적

아다 로이스 시퓰 피셔(Ada Lois Sipuel Fisher, 1924년 11월 2일~2013년 3월 19일)는 재판 당시에는 '아다 주얼 피셔 시퓰', 결혼 후에는 '아다 로이스 시퓰 피셔 불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미국의 민권운동가입니다.

역사적인 연방대법원 판결: 시퓰 사건

피셔는 자신의 인종과 성별 때문에 오클라호마 대학교 로스쿨 입학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녀의 소송은 시퓰 대 오클라호마 대학교 이사회(Sipuel v. Board of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Oklahoma)라는 이름으로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상계되었으며, 이 사건은 스웨트 대 페인터(Sweatt v. Painter) 사건과 함께 심리된 동반 사건이었습니다.

오클라호마주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 주 정부 측에 유리하게 판결했지만, 연방대법원은 두 사건을 통합해 1948년 12월 12일 함께 심리한 뒤 1949년 1월 12일 피셔와 스웨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관들은 만장일치로, 주가 자체 관할권 내에서 동등한 대안적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이 전문대학원이나 대학원 과정에 입학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민권 분야의 기념비적인 선례로 평가받으며, 바로 이 판결 덕분에 피셔는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법조인으로서의 경력

1951년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법무박사(J.D.) 학위를 취득한 피셔는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변호사 개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법무부 민권국에서 근무했으며, 1962년부터 1964년까지는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NAACP(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 수석 법률 고문의 보조로 활동하며 민권 사건에 대한 법적 구제를 위해 힘썼습니다. 1964년에는 오클라호마시티 흑인 변호사 협회(Oklahoma City Black Lawyers' Association) 설립에도 기여했습니다.

개인적인 삶과 말년

피셔는 월터 L. 불록(Walter L. Bullock)과 결혼하여 2007년 남편이 별세할 때까지 부부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2013년 3월 19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당뇨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