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바·후시미 전투와 관군의 공인
1868년 1월 3일, 교토 교외의 도바·후시미에서 사쓰마·조슈(薩長) 번 병사들을 주축으로 한 신정부군과 구 막부군이 격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바·후시미 전투입니다. 구 막부군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지휘 계통의 혼란이라는 약점 때문에 패색을 거듭했습니다.
다음 날, 조정은 사쓰마 군에 금기(錦旗)를 하사하며 이들을 공식적인 관군(官軍)으로 인정했고, 이후 도사 번도 신정부군에 가담하며 세력이 확장되었습니다.
에도성 무혈 개성
한편, '조적(朝敵)'로 몰린 구 막부군은 내부적으로 붕괴의 조짐을 보였습니다. 1월 6일 밤, 요시노부는 군대를 버리고 오사카성에서 탈출해 배로 에도로 물러났고, 전쟁의 명분을 잃은 구 막부군은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신정부군은 요시노부 토벌을 대의명분으로 삼아 아리스가와 다루히토 친왕을 동정대총재(東征大總督)로 임명하고 에도로 진격했습니다. 진군 도중 도카이 지역의 번주들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차례로 신정부에 귀순했기 때문에, 에도까지는 큰 저항 없이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에도에 도착한 신정부군은 3월 15일을 에도성 총공격일로 정했습니다.
이에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가쓰 가이슈(勝海舟)의 건의를 받아들여 프랑스의 원조를 거절하고 메이지 유신에 순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가쓰 가이슈는 오랜 친분이 있던 신정부군 참모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강화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가쓰 가이슈는 국력 소진을 고려해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에도성의 무혈 개성과 병기·군함의 인도를 조건으로 요시노부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이끌어냈습니다.
'팔백팔정(八百八町)'이라 불리던 에도 시가지는 이 무혈 개성 덕분에 전화(戰禍)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무렵 강경파 막신과 한학자들이 중심이 된 창의대(彰義隊)가 우에노 간에이지(寬永寺)에 근거를 두고 끝까지 항전했지만, 신정부군의 근대식 무기 앞에서 단 하루 만에 궤멸당했습니다.
보신전쟁의 확산
이어서 신정부군은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구 막부군 편에 섰던 아이즈·쇼나이 번의 토벌을 목표로 도호쿠 지방으로 진군했습니다. 한편 무쓰(陸奧)·데와(出羽)·에치고(越後) 등 25개 번의 대표들은 5월 센다이번의 시라이시(白石)에 모여 아이즈·쇼나이 토벌 철회를 신정부에 탄원했습니다. 탄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도호쿠 번들 또한 결의서에 서명하고 끝까지 싸우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도호쿠 번들의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정부는 도호쿠 방면 총공격을 결정했습니다.
도호쿠 지역에서도 최신 화기를 도입한 에치고 나가오카성 공방전과 의지(義烈)가 불타오르던 아이즈 와카마쓰성 공방전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성들은 함락되었고, 다른 번들도 거의 전투 없이 신정부군에 항복하면서 9월에 도호쿠 전선은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나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는 에도성 개성 때 막부 군함을 이끌고 탈출했으며, 아이즈에서 빠져나온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도시조(土方歲三)와 합류했습니다. 에노모토 등은 옛 막신들을 구제하기 위해 하코다테의 요새 고료카쿠(五稜郭)를 거점으로 에조(蝦夷)에 공화제 독립국가를 세우려 했습니다.
고료카쿠는 가나가와 조약 체결에 따른 하코다테 개항 이후 국방 강화를 위해 건설된 성곽형 요새입니다. 내부에 하코다테 봉행소를 설치하는 등 순수한 군사 시설에만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전통 성곽과는 거리가 먼 서양식 성곽이라고 합니다. 실제 하코다테 전쟁 당시에는 봉행소 건물이 함포 사격의 표적이 되면서 요새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도호쿠 번들을 제압한 신정부군은 에조(홋카이도)에 상륙하여 격전 끝에 고료카쿠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신정부에 의한 전국 통치가 사실상 완성되었습니다.
이 일련의 내전은 보신전쟁(戊辰戰爭)이라 불리며, 일본 역사상 최대의 내전으로 꼽힙니다.
보신전쟁의 특징 중 하나는 농민 출신 병사들이 신정부군에 많이 참가하여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민중의 구 영주에 대한 반감은 막번(幕藩) 체제의 붕괴를 초래했고, 신정부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아래 연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쟁이 1년 안에 종결되어 영국이나 프랑스의 군사 개입이 없었다는 점은 일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전쟁 연표
- 1868년 1월 – 도바·후시미 전투: 구 막부군과 사쓰마·조슈 연합군이 도바·후시미에서 충돌
- 4월 – 에도성 무혈 개성: 막신 가쓰 가이슈와 신정부군 참모 사이고 다카모리의 회담으로 성립
- 5월 – 우에노 전쟁: 신정부군이 간에이지에 근거를 둔 창의대를 격파
- 5~7월 – 나가오카성 전투: 에치고의 나가오카번이 신정부군에 저항했으나 7월에 함락
- 8~9월 – 아이즈 전쟁: 교토 수호직 마쓰다이라 가타모리가 끝까지 항전. 백호대(白虎隊)의 비극으로 널리 알려짐
- 9월 – 센다이번 항복: 각 번이 차례로 패배하고, 도호쿠 번 연합의 맹주인 센다이번이 항복
- 10월~ – 하코다테 전쟁: 신정부군의 맹공격 속에 이듬해 5월 항복하며 보신전쟁이 종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