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의 참전 시점: 1950년 10월 25일
중국군은 중국인민지원군(CPVA)이라는 이름으로 1950년 10월 25일 6·25 전쟁(한국전쟁)에 공식적으로 참전했습니다. 중국은 '자원병'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규군 부대가 대규모로 파견된 것이었습니다.
참전의 배경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가 역전되면서 유엔군이 북진하여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하자, 중국 지도부는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느꼈습니다. 미군과 한국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이 압록강에 도달할 경우 중국 본토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에 마오쩌둥의 결정 아래 펑더화이(彭德懷) 장군이 지휘하는 대규모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했습니다.
첫 교전과 전쟁의 전환점
중국인민지원군은 참전 첫날인 10월 25일 평안북도 운산 일대에서 한국군 및 유엔군과 처음으로 교전했으며, 이를 기념해 중국은 이 날을 '항미원조 전쟁'의 시작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전선은 다시 38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