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1세는 왜 존 발리올을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선택했을까?
흔히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존 발리올(John Balliol)을 직접 골라 앉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실제로 발리올은 스코틀랜드 수호자들(Guardians of Scotland)에 의해 왕위 계승자로 선정되었으며, 에드워드 1세는 그를 국왕으로 공식 승인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에드워드는 왜 하필 발리올을 지지했을까요?
왕위 계승 위기와 '그레이트 코즈'
1290년 어린 여왕 마거릿(Margaret, Maid of Norway)이 요절하면서 스코틀랜드에는 왕위를 이을 적통이 끊겼습니다. 이에 귀족들로 구성된 수호자들은 왕위 다툼을 막기 위해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에게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열둘 이상의 왕위 주장자들이 나섰고, 이 심사 과정은 '그레이트 코즈(Great Cause)'라 불리며 1291년부터 베릭(Berwick)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법적으로 가장 강력한 상속권
에드워드가 발리올을 지지한 핵심 이유는 상속 원칙이었습니다. 발리올은 데이비드 1세의 후손인 헌팅던 백작 데이비드의 장녀 마거릿의 외손자였습니다. 반면 경쟁자였던 로버트 드 브루스(Robert de Brus)는 차녀의 후손이었지만 한 세대 더 가까웠습니다. 당시 기준인 장자 우선 상속(primogeniture) 원칙에 따르면, 혈통상 선배(先輩)의 장녀 계승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발리올의 권리가 더 강력하게 인정된 것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을까?
일부 역사학자들은 법적 근거 외에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나이가 많고 성격이 온순하던 발리올은 브루스보다 통제하기 쉬운 인물로 여겨졌고, 에드워드 입장에서는 스코틀랜드를 간접적으로 지배하기에 유리한 인선이었습니다. 실제로 에드워드는 발리올에게 잉글랜드 왕을 스코틀랜드의 최고 영주(overlord)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고, 주장자들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1292년, 왕으로 공식 승인되다
1292년 11월 17일 에드워드는 버릭에서 판결을 발표해 발리올의 왕위 계승권을 확정했고, 같은 해 11월 30일 성 안드레아스 축일에 스콘 수도원(Scone Abbey)에서 정식 즉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로써 발리올은 스코틀랜드의 국왕 존(John)이 되었습니다.
즉위 이후의 비극
그러나 에드워드는 발리올을 자신의 봉신처럼 대우했고, 스코틀랜드 법정에 대한 항소 심리 개입, 대프랑스 전쟁에 병력 동원 요구 등 간섭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1296년 발리올은 잉글랜드에 대한 충성 서약을 파기하며 반기를 들었으나, 에드워드의 침공 끝에 폐위당하고 왕국 문장이 새겨진 외투를 거두어지며 굴욕적으로 퇴장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수백 년간 이어지는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