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 영국 식민지를 이룬 다양한 사람들
1770년경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이미 단일한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면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지녔습니다.
유럽계 이주민
식민지 인구의 절대 다수는 유럽계였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출신이 주를 이루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온 이주민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계 노예
노예로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도 대규모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남부 식민지에서는 농장 노동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며 식민지 경제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이 땅의 본래 주인인 아메리카 원주민 역시 식민지 곳곳에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들여온 질병과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인구가 크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그 밖의 소수 집단
이 외에도 유대인, 중국인, 인도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소수의 사람들이 식민지 사회 일각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식민지를 움직인 다양한 사상
사람만큼이나 생각 또한 다양했습니다. 종교, 정치, 경제 분야에서 식민지 주민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종교적 다양성
식민지에는 여러 개신교 교파가 공존했으며, 가톨릭 신자와 유대교 신자, 그리고 무슬림까지 있었습니다. 국교 하나로 묶인 사회가 아니라 다원적인 종교 환경이 형성되어 있던 것입니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
정치적으로도 의견이 크게 갈렸습니다. 일부는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바랐고, 다른 일부는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식민지와 본국의 관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경제 관념의 대립
경제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경제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다양성이 남긴 결과: 미국 혁명의 씨앗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과 신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뒤섞인 식민지 사회는 중요한 현안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긴장과 갈등은 누적되었고, 미국 혁명이라는 폭발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