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나라들이 늘 '그녀(her)'라고 불리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적으로는 '나라', '국가', '국토', '영토' 등 중립적인 용어로 지칭되죠. 그러나 영어권 문학과 언론에서 나라를 '그녀'로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사적·언어적 배경이 숨어 있습니다.
나라를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전통
오랫동안 서양 문화권에서는 나라를 한 사람의 인물처럼 그리는 '의인화(personification)' 관습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음과 같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 브리타니아(Britannia): 영국을 여전사 형상으로 표현한 상징
- 자유의 여신상: 미국의 이상과 자유를 여성의 모습으로 구현
- 마리안(Marianne):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성 인물
- 모국(motherland): 조국을 어머니에 빗대어 애틋함을 표현하는 단어
이처럼 나라를 여성으로 묘사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애착과 보호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고향과 같은 따뜻한 감성을 담기 위한 문학적 장치였습니다.
언어의 문법적 성별이 만든 착시
또 하나의 이유는 언어 자체의 특성입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많은 유럽 언어에는 명사마다 문법적 성별(gender)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에서 '국가'를 뜻하는 'nación'은 여성형 명사이지만, '나라'를 뜻하는 'país'는 남성형 명사입니다. 즉, 나라 자체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특정 단어의 문법적 성별 때문에 여성으로 번역되거나 묘사되어 보일 뿐입니다.
배도, 도시도 '그녀'
영어권에서는 배(ship)를 'she'라고 부르는 관습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선원들이 배를 사람처럼 아끼고 애착을 담아 부르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나라를 '그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의인화 표현입니다. 도시나 대학 등을 여성형으로 부르는 경우도 이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합니다.
결론: 규칙이 아닌 문화적 관습
정리하자면, 나라가 '그녀'로 불리는 것은 보편적인 문법 규칙이나 국제적 약속이 아닙니다. 나라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의인화 관습이며, 여기에 일부 언어의 문법적 성별이 더해져 오늘날까지 이어진 표현입니다. 따라서 나라는 여전히 '국가' 또는 '나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중립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