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업에는 이름 없는 영웅이 있습니다
어떤 직업 분야에나 '이름 없는 영웅'들이 존재합니다. 깊은 인격과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들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확실한 발자취를 새겼고 그 성실함과 겸손함으로 가족과 지인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빛나고 있습니다.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도 아부와 헌사에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며 후대에게 본보기가 될 모범을 남겼습니다.
전기 시리즈 "그리고, 그는 누구였을까?"의 이번 주인공은 104세 장수를 누렸고 사망 얼마 전까지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며 평생 동안 삶과 교직에 대한 '명강의'를 해준 진정한 교육자입니다. 하이메 과달루페 보바디야(Jaime Guadalupe Bobadilla)가 집필한 이 글을 통해 에밀리오 바란테스 레보레도 선생을 만나보겠습니다. 이 글은 우리의 기억에 남는 동료이자 너그러운 친구였으며, 페루 언론계의 숨은 영웅인 후안 카를로스 비센테 카스트로(Juan Carlos Vicente Castro)의 추모에 바칩니다.
페루 교육을 바꾼 변혁적 교육자
에밀리오 바란테스 레보레도는 페루 교육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작가로서도 교육학을 비롯한 여러 주제의 책을 다수 집필했으며, 시 창작에도 몰두해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의 작품 세계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아마우타(Amauta)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José Carlos Mariátegui)와도 인연을 맺었고,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José María Arguedas)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생애와 학업
그는 1903년 10월 카하마르카(Cajamarca)에서 태어나 2007년 7월 리마(Lima)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향의 산라몬 국립학교(Colegio Nacional San Ramón)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1930년 리마의 국립남자사범연구소를 졸업하고 '노말리스타'(Normalista) 교원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교직에 들어서자마자 모던 연구소의 원장을 맡았고, 1938년에는 환카요(Huancayo) 산타이사벨 국립학교 중등부에서 페루사 강의를 담당했습니다.
교육 행정과 학문적 성취
1941년에는 리마 교육부 중등교육 담당국장으로 부임하여 교육 계획과 프로그램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46년에는 산마르코스 국립대학교(UNMSM) 문학부에서 논문 「페루의 중등교육」으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설립된 교육학부의 교수로 재직하며 두 차례(1956~1961년, 1964~1967년) 학부장을 역임했습니다. 또한 교육부 중등교육 교육학 섹션의 책임자를 맡았고, 상설 교육조정위원회와 교원 처우 실태 조사위원회의 위원장도 지냈습니다.
페루 교육 개혁의 주역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Juan Velasco Alvarado) 정부 시절, 그는 저명한 교육학자 아우구스토 살라사르 본디(Augusto Salazar Bondy), 왈테르 페뇰로사 라멜라(Wálter Peñaloza Ramella)와 함께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국가적 규모의 교육·문화 혁신 사업에서는 교육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진단이 이루어졌고, 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보는 전 수준의 교육 개혁이 제안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혁신적인 프로젝트는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Fernando Belaúnde Terry)의 두 번째 정부 시절 철회되었고, 페루는 다시 초등-중등-고등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교육 체제로 되돌아갔습니다.
교직의 여정
팔카(Palca)를 떠난 뒤에도 그의 교직 여정은 계속되었습니다. 환카요의 산타이사벨 학교에서 시작해 리마의 알폰소 우가르테 종합학교를 거쳐 산마르코스 국립대학교로 이어졌고, 마침내 그 경력의 정점인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장에 올랐습니다.
교육 사상과 저작 세계
에밀리오 바란테스 레보레도의 교육 사상은 그의 삶, 그의 업적, 그리고 인문주의적 소명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고 더욱 알려지지 못했지만, 그의 기여는 시장이나 특허로 살 수 없는 참된 지침을 원하는 교육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40년 – 『환카요의 민속』
- 1945년 – 『페루의 중등교육』
- 1946년 – 『페루의 중등교육과 신교육』
- 1948년 –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의 철학과 기법』
- 1950년 – 『교육학 개론』
- 1952년 – 『교실 속의 삶』
- 1954년 – 『페루에서 교육이 감당해야 할 과제』
- 1963년 – 『인간적인 학교』
- 1979년 – 『아이와 우리』
- 1985년 – 『변화하는 현실의 시각과 분석』
- 1989년 – 『페루 교육의 역사』
- 1990년 – 『개혁 연대기』
- 1993년 – 『교육 입문』
- 1998년 – 『자연·사회·문화를 말하다』
- 1999년 – 『살아 있는 페루』
- 2003년 – 『석양의 산문』
- 2004년 – 『새로운 정치적 지평: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 100세 생일에 출간되어 그의 유언 같은 유작으로 꼽힙니다.
영예와 유산
에밀리오 바란테스 레보레도는 공립학교와 국립학교의 교사, 산마르코스 대학의 교수였으며, 남자사범학교—훗날 국립사범연구소를 거쳐 엔리케 구스만 이 바예 국립교육대학교(라 칸투타)로 발전—에서 성품과 재능을 갖춘 교육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소명과 실천의 모범이 됩니다. 단순히 흔적만 남긴 것이 아니라 길을 찾는 법까지 가르쳤습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교사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2003년 7월, 페루 교육부는 그에게 최고 등급인 '아마우타' 팔마스 마히스테리알레스(Palmas Magisteriales)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29일에는 데라마 마히스테리알(Derrama Magisterial)이 기관 최고의 상인 호세 안토니오 엔시나스 명예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이 훈장은 당대 최고의 페루 교육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엔시나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에밀리오 바란테스 레보레도는 그의 가장 뛰어난 제자이자 계승자 중 한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