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 브라질 식민지 시대 흑인 자유의 요새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Quilombo dos Palmares)는 브라질 식민지 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킬롬보 중 하나로, 그 기원은 15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팔마레스는 페르남부쿠와 바이아 지방의 농장에서 탈출한 노예들의 피난처였습니다.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 브라질 식민지 시대 흑인 자유의 요새

킬롬보란 무엇인가?

'킬롬보(quilombo)'라는 단어는 반투어(Bantu) 어원을 지니며, 숲속에 마련된 전사들의 야영지를 뜻합니다.

1740년, 포르투갈 국왕에게 보고하면서 해외평의회(Conselho Ultramarino)는 킬롬보를 "탈출한 흑인들이 5명 이상 모여 사는 모든 거처"로 공식 정의했습니다. 설령 오두막이나 울타리가 없고, 그중 도망 노예가 한 명뿐이라 하더라도 예외로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킬롬보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곳은 단연 팔마레스였습니다. 이곳은 거의 두 세기에 걸쳐 식민지 행정에 맞서 저항했습니다.

역사 요약

초기 팔마레스에는 소수의 킬롬볼라(quilombolas, 킬롬보 주민)만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의 전쟁으로 식민지 당국의 감시가 느슨해지면서, 수백 명의 노예가 탈출해 최초의 정착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6세기 말에 등장한 팔마레스의 진정한 전성기는 17세기 후반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약 2만 명의 킬롬볼라가 거주했습니다. 주민들은 사냥, 낚시, 과일 채집(망고, 잭프루트, 아보카도 등)과 농경(콩, 옥수수, 카사바, 바나나, 오렌지, 사탕수수)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바구니, 직물, 도자기, 금속 세공 같은 공예품을 생산했고, 남은 물건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판매되어 킬롬보 지역에 상당히 활발한 경제가 형성되었습니다.

팔마레스의 초대 왕은 콩고 공주의 아들인 강가 줌바(Ganga Zumba)였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공동체의 조직화와 외부 공격에 대한 저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그는 줌비(Zumbi)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킬롬볼라들의 신분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크게 다음과 같이 나뉘었습니다.

  • 스스로의 힘으로 킬롬보에 도달한 사람들(가장 높은 지위)
  • 게릴라 습격을 통해 해방된 사람들(천대를 받으며 가장 힘든 일에 동원됨)

특히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여러 개의 모캄보(mocambo, 정착 핵심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집단 간에 권력이 분산되는 분권적 정치 구조를 보여줍니다.

팔마레스 내부에도 노예제가 존재했습니다. 다만 이는 유럽 백인들이 중세에 행하던 것과 유사한, 자발적이고 덜 굴욕적인 형태의 노예제였습니다.

위치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이 지역 농장에서 탈출한 노예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알라고아스주의 세라 다 바리가(Serra da Barriga)에 위치했으며, 이 일대가 종려나무로 뒤덮여 있어 '팔마레스(Palmares)'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 브라질 식민지 시대 흑인 자유의 요새

팔마레스의 몰락

팔마레스의 번영은 식민지 개척자들의 탐욕을 자극했습니다. 브라질 북동부에서 네덜란드가 축출되자,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설탕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 더 많은 노예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킬롬보는 농장주들에게 노동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인 동시에, 노예들에게 위험한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를 완전히 파괴하기까지 무려 18차례의 군사 원정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실패한 공세 끝에, 포르투갈 왕실은 원주민 말살 전쟁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개척자 도밍고스 조르제 벨류(Domingos Jorge Velho)를 고용합니다.

그러나 그의 부대조차 마룬(maroon, 탈출 노예)들의 게릴라 전술을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킬롬보는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줌비가 사망한 직후에야 비로소 막을 내렸습니다.

흑인들의 패배 이후에도 팔마레스 지역은 다시 성장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빌라 노바 임페라트리즈(Vila Nova Imperatriz)로 불렸고, 1889년 8월 20일 시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리고 1944년, 킬롬보를 기리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우니앙 도스 팔마레스(União dos Palmares)로 명명되었습니다.

줌비 도스 팔마레스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 브라질 식민지 시대 흑인 자유의 요새

1655년, 오늘날 알라고아스주에 해당하는 팔마레스에서 태어난 줌비 도스 팔마레스(Zumbi dos Palmares)는 킬롬보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사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포획되어 안토니오 멜루 신부에게 보내졌고, 신부에게서 포르투갈어와 라틴어를 배우며 '프란시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1670년, 그는 교구를 탈출해 킬롬보로 돌아왔고, 저항 운동을 조직하는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일련의 성공적인 게릴라 작전을 계획한 공로로, 그는 전쟁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인 '줌비(Zumbi)'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전에는 노예를 해방하고 무기, 탄약,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 설탕 공장(엥제뉴)을 기습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데란테 용병 원정대를 상대로 한 승리를 비롯해 수차례의 승전 끝에, 줌비는 1695년 11월 궁지에 몰려 살해당했습니다.

그의 머리는 잘려 헤시피로 운반되어 공공 광장에 전시되었습니다. 줌비의 군사적 지휘가 사라지자, 킬롬보는 1710년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매년 11월 20일은 '흑인 의식의 날(Dia da Consciência Negra)'로 기념됩니다. 이 날은 줌비 도스 팔마레스와 노예제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모든 흑인들에게 바치는 경의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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