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구 공화국(1889~1930): 군부 통치에서 과두제 공화국까지

구 공화국(Old Republic)은 1889년 11월 15일 공화국 선포부터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이끈 1930년 혁명까지 이어진 브라질 공화국의 첫 번째 시기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전통적으로 브라질 공화국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구 공화국 (1889~1930)
  • 신 공화국 또는 바르가스 시대 (1930~1945)
  • 현대 공화국 (1945~현재)

구 공화국 제1기 (1889~1894): 검의 공화국

구 공화국의 첫 번째 시기는 초대 대통령 두 사람인 데오도루 다 폰세카와 플로리아누 페호투가 모두 군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검의 공화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화국 선포 다음 날, 브라질에는 데오도루 다 폰세카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 정부가 조직되었고, 그는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가를 이끌었습니다.

최초의 공화국 헌법은 1891년 2월 24일 입헌 의회에 의해 공포되었습니다.

다음 날, 의회는 브라질의 초대 대통령인 데오도루 다 폰세카 원수(재임 1889~1891)와 부통령 플로리아누 페호투를 선출했습니다.

새 정부는 문민과 군부 사이에 수많은 갈등을 안겨주었으며, 데오도루에 대해서는 이미 의회 내에서 강한 반대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11월 3일, 데오도루는 의회를 해산했고, 이에 즉각 반격 쿠데타가 조직되었습니다. 데오도루는 사임하여 권력을 부통령 플로리아누 페호투에게 넘겼습니다.

플로리아누 페호투(재임 1891~1894)는 강력한 군부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취임했습니다. 의회 해산은 철회되었지만, 헌법상 요구된 새로운 선거는 치러지지 않았습니다.

플로리아누의 통치 기간에는 라제 요새와 산타크루즈 요새의 반란, 연방주의 반란, 그리고 약 1만 명의 사망자를 낸 해군 반란 등 여러 차례의 봉기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플로리아누는 강권으로 통치하며 '철의 원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구 공화국 제2기 (1894~1930): 과두제 공화국

구 공화국의 두 번째 시기는 농장주 귀족(올리가르히아)이 정치를 지배했기 때문에 '과두제 공화국'이라고 불립니다.

대통령 승계 과정에서 상파울루와 미나스 제라이스 출신 대통령들이 교대로 집권했습니다. 이 시기에 선출된 대통령 중 미나스 제라이스와 상파울루 출신이 아닌 인물은 에르메스 다 폰세카, 에피타시우 페소아, 바싱투 루이스 단 세 명뿐이었습니다.

구 공화국의 대통령들

다음은 군부 주도의 '검의 공화국'(데오도루 다 폰세카, 플로리아누 페호투 집권기) 이후 구 공화국을 이끈 대통령들입니다.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 (1894~1898)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는 공화국 최초의 문민 출신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격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취임했습니다. 제국 시대부터 존재해 온 '코로넬리즘(coronelismo)', 즉 지역 유력자의 정치 권력은 구 공화국 시기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코로넬(colonel)'이라는 칭호는 국민위병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들은 연방 행정부의 최고 결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 두목들이었습니다.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 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카누두스 전쟁'(1896~1897)이었습니다.

카무스 살레스 (1898~1902)

카무스 살레스는 '주지사 정책(Política dos Governadores)'으로 알려진, 농업 올리가르히아와의 합의를 체결했습니다. 이는 상호 호혜적인 거래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지위 있는 후보만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호드리게스 알베스 (1902~1906)

호드리게스 알베스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도시화와 위생 환경 개선을 추진했으며, 백신 반란, 타우바테 협약, 아크레 문제 등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191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취임 전에 사망했습니다.

아폰수 페나 (1906~1909)

아폰수 페나는 상파울루와 마투그로수를 연결하는 철도망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군대를 개편했으며, 국가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이민을 장려했습니다.

그는 임기를 완수하기 전에 사망했으며, 부통령 닐루 페사냐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닐루 페사냐 (1909~1910)

닐루 페사냐는 인디언 보호국(SPI)을 설립했으며, 이 기관은 1967년 FUNAI(브라질 국립 원주민 재단)로 대체되었습니다.

에르메스 다 폰세카 (1910~1914)

에르메스 다 폰세카의 정부는 '채찍 반란', '해병대 반란', '후아제이루 반란', '콘테스타두 전쟁' 등 사회·정치적 격랑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벤셀라우 브라스 (1914~1918)

그의 임기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과 겹쳤으며, 브라질은 독일에 맞서 참전했습니다.

그의 정부 하에서 '브라질 민법'이 공포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스페인 독감이 브라질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에피타시우 페소아 (1918~1922)

에피타시우 페소아 정부 시절에는 북동부 가뭄 대책 사업이 진행되었고, 육군 개편과 철도 건설이 추진되었습니다.

당시 상파울루와 미나스 제라이스 출신 후보가 번갈아 선출되는 '커피 우유 정책(Política do Café com Leite)'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1922년에는 코파카바나 요새 반란이 일어났고, 현대미술주간을 통해 모더니즘이 브라질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 (1922~1926)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는 정치적 격랑과 테넨티즘 성향의 봉기에 대처하기 위해 임기 전체를 계엄 상태로 통치했습니다. 경제 상황 또한 매우 심각하여 인플레이션과 수출 가치 하락이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동안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티스의 지휘 아래, 올리가르히아 전복을 목표로 한 혁명 부대가 브라질 내륙을 2만 km 이상 행진했습니다.

바싱투 루이스 (1926~1930)

바싱투 루이스 대통령은 리우-상파울루, 리우-페트로폴리스 도로 건설 등 도로망 확충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30년 혁명으로 축출되었고, 이로써 '커피 우유 정책'도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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