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공화국 선포(1889): 군주제의 종말과 공화정 시대의 개막

브라질 공화국 선포는 1889년 11월 15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역사적인 날, 브라질에서는 군주제가 막을 내리고 공화정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대통령제가 확립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초대 대통령은 마레샬 데오도루 다 폰세카(Marechal Deodoro da Fonseca)였습니다.

브라질 공화국을 선포한 사람은 누구인가?

공화국은 브라질 육군의 핵심 지도자였던 마레샬 데오도루 다 폰세카(1827~1892)가 1889년 11월 15일에 선포했습니다.

그는 군사 쿠데타를 준비하던 군인 그룹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베자민 콘스탄트(Benjamin Constant, 1836~1891)가 특히 두드러진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데오도루 다 폰세카는 건강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를 쿠데타의 지도자로 설득하기 위해 군부는 쿠데타의 진짜 목적이 군주제 전복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숨겼습니다. 원수가 당시 황제 도무 페드루 2세(Dom Pedro II)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부대들은 리우데자네이루 중심부의 캄푸 드 산타나(Campo de Santana)에 집결하여 우루 프레투 자작(Visconde de Ouro Preto, 1836~1912)의 내각을 전복시켰습니다. 이 시점에는 아직 공화국이 선포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데오도루가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여러 정치인들이 그에게 군주제 소멸을 선언하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황제가 우루 프레투 자작을 대신해 정치인 실베이라 마르팅스(Silveira Martins, 1835~1901)를 임명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베이라 마르팅스는 데오도루 원수와 오래전부터 불화가 있던 인물이었기에, 그는 공화국 결의문에 서명했고 임시 정부의 수반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공화국 선포는 약 70년간 지속된 브라질 제국의 종말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황제 도무 페드루 2세는 가족과 함께 브라질에서 추방되어 11월 17일 새벽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 내전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도무 페드루 2세가 자신의 동맹 세력을 소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공화국 선포가 일어났을까?

공화국 선포는 브라질 엘리트층이 도무 페드루 2세(1825~1891)의 통치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불만은 국내 정치 무대의 핵심 세력인 군부, 커피 재배업자, 가톨릭 교회에서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이 중요한 세력들의 지지를 잃으면서 도무 페드루 2세는 정치적으로 크게 취약해졌고, 결국 49년간 차지해 온 왕좌에서 그를 몰아내는 군사 쿠데타로 이어졌습니다.

군부의 불만

군부는 파라과이 전쟁(1864~1870) 이후 임금 인상과 정부 참여 확대를 계속 요구해 왔음에도 외면당했다고 느껴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또한 상당수 장교들이 종교적·철학적 측면 모두에서 실증주의(Positivism)를 지지했는데, 이는 공화 운동에 강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커피 재배업자의 반발

한편 커피 재배업자들은 보상 없이 단계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는 법률이 제정된 이후 점점 더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상파울루 서부의 지주들은 더 많은 자율성과 정치 참여를 요구했습니다. 1888년 브라질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전 노예 소유주들은 커피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하자 도무 페드루 2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

마지막으로 가톨릭 교회는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갈등 이후 황제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교황 비오 9세는 1864년 프리메이슨 회원을 파문해야 한다는 내용의 교황 칙서(공식 문서)를 반포했습니다.

그런데 도무 페드루 2세 정부의 핵심 인사 중 일부가 프리메이슨이었기에, 황제는 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황의 결정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성직자들과의 마찰이 심화되었습니다.

이처럼 핵심 세력들의 지지를 잃은 것이 1889년 황제의 몰락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되었습니다.

브라질 공화국의 초기

임시 정부는 국민이 입헌군주제와 공화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국민투표를 예정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투표는 무려 103년 후에야 실시되었습니다.

데오도루 원수는 브라질 국가, 브라질 국기 등 공화국의 상징들을 정비했으며, 국가 정책의 기본 방향도 마련했습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같은 선거 명부에 올랐던 것이 아니라 별도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데오도루 다 폰세카가 대통령으로, 플로리아누 페호투(Floriano Peixoto) 원수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초대 두 명의 정부 수반 겸 국가 원수가 모두 육군 출신이었기 때문에, 공화국 초기는 '칼의 공화국(República da Espada)'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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