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카라무르(Caramuru): 브라질의 '생물학적 아버지', 최초의 포르투갈 정착자

디오구 알바레스 코헤이아(Diogo Álvares Correia), 일명 카라무르(Caramuru)는 브라질 바이아 지역에 정착한 최초의 포르투갈인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투피남바(Tupinambá) 부족 출신 원주민 여성 파라과수(Paraguaçu)와 결혼했기 때문에 오늘날 브라질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불립니다.

생애

카라무르에 관한 당대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현재 알려진 대부분의 정보는 1569년경 바이아에서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던 가브리엘 소아레스 드 소자(Gabriel Soares de Sousa)의 저술을 바탕으로 하며, 바이아와 리우데자네이루의 학교에서 학장과 교장을 지낸 예수회 선교사 시망 드 바스콘셀루스(Simão de Vasconcellos)가 남긴 더욱 상세한 기록도 함께 참고됩니다.

디오구 알바레스 코헤이아는 포르투갈 비아나두카스텔루(Viana do Castelo)에서 태어나 1509년에서 1510년 사이에 바이아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난파선 생존자였는지, 아니면 원주민들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도록 선장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후자의 방식은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연안에서 이미 활용하던 방법으로, 이렇게 남겨진 사람이 포르투갈과 현지 주민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카라무르가 프랑스 배를 타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는 프랑스인들이 해당 지역 원주민들과 교역하는 것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소아레스 드 소자에 따르면, 디오구는 총을 발사해 새 한 마리를 격추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화약을 전혀 알지 못하던 인디언들은 폭발음에 크게 놀랐고, 그를 '카라무르', 즉 '불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반면 다른 설에 따르면, 난파 과정에서 옷이 흠뻑 젖고 몸에 해조류가 들러붙은 모습 때문에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그를 '카라무르', 즉 바다 암초 사이에 서식하는 머레이 장어 같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카라무르와 파라과수

카라무르의 인생은 투피남바 부족 추장 타파리카(Taparica)의 딸 파라과수(Paraguaçu)와 사랑에 빠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일부 연대기에는 그녀가 카라무르가 부족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구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1528년 함께 프랑스로 건너갔고, 파라과수는 생말로(Saint-Malo)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캐나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의 아내이자 대모가 된 카트린 데 그랑주(Catherine des Granges)를 기려 '카타리나 두 브라질(Catarina do Brasil)', 즉 '카타리나 데 그랑주'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식 역시 이 프랑스 도시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프랑스 여행 이후 카라무르는 포르투갈 국왕과 접촉하여 바이아 식민지화를 위해 사람, 동물, 무기를 실은 카라벨선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원정은 1549년 바이아에 도착한 토메 드 소자(Tomé de Sousa)가 이끌게 됩니다.

카라무르(Caramuru): 브라질의  생물학적 아버지 , 최초의 포르투갈 정착자

그림 앞쪽에서는 파라과수가 원주민들로부터 카라무르를 구하는 장면이, 뒤쪽에서는 카라무르가 총을 발사해 원주민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브라질 최초의 가족

카라무르와 파라과수는 브라질 최초의 가톨릭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덕분에 그들의 딸들은 세례를 받고 공식적으로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네 딸이 태어났습니다. 주네바(Geneva), 아폴로니아(Apolônia), 그라사(Graça), 마다레나(Madalena)입니다. 딸들은 새로 도착한 포르투갈 귀족들과 결혼하면서 최초의 바이아 및 브라질 가문을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후손은 약 5천만 명의 브라질인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또한 카라무르는 다른 원주민 여성들 사이에서도 1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는 1557년 10월 5일 바이아의 타투아파라(Tatuapara)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 '파라과수'라는 이름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카타리나의 실제 원주민 이름은 아마도 과이빔파라(Guaibimpará)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카라무르를 따라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인디언 여성 모에마(Moema)는 1781년 서사시 『카라무르』의 작가 프레이 산타 리타 두랑(Frei de Santa Rita Durão)이 창작한 인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 카라무르 – 브라질의 발명(Caramuru: A Invenção do Brasil), 감독: 구엘 아라에스(Guel Arraes), 2001년
  •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카라무르(Daí para Cá: Caramuru),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