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일곱 민족(Sete Povos das Missões) 지역은 스페인이 라플라타 강(Río de la Plata) 유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추진한 전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 주 서부에 자리한 이곳은 예수회가 과라니 원주민과 함께 세운 독특한 선교 공동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위치
이 지역은 1682년에 설립된 상프란시스쿠 보르자(São Francisco Borja)를 시작으로, 1687년의 상니콜라우(São Nicolau)와 상루이스 곤자가(São Luiz Gonzaga)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여기에 상미겔 아르칸조(São Miguel Arcanjo, 1687), 상로렌수 마르티르(São Lourenço Mártir, 1690), 상주앙 바치스타(São João Batista, 1697), 산투 안젤루 쿠스토디오(Santo Ângelo Custódio, 1707)가 더해져 일곱 개의 선교 마을이 완성되었습니다.

선교 마을은 '레두상(redução)'이라고도 불리며, 예수회(Society of Jesus) 사제들이 설립하고 운영했습니다. 총 30개의 레두상은 오늘날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영토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민족의 원주민이 거주했지만 대다수는 과라니족(Guarani)이었습니다.
과라니 원주민들은 1626년 스페인 출신 예수회 사제들이 도착하면서 유럽 문명의 충격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회는 스페인 왕권 아래에서 원주민을 포교하고 '문명화'하는 것을 목표로 이 지역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착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 내내 노예 사냥을 위해 남하한 개척자들과 원주민 사이의 전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쟁 속에서 선교 마을들은 파괴되었고, 과라니족의 첫 번째 대이동이 일어났습니다. 평화가 찾아오면 원주민들은 예수회의 도움을 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회 사제들이 직면한 과제 중 하나는 원주민들에게 정착 생활과 일부일처제를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과라니족은 본래 유목 생활을 하고 일부다처제를 따랐으며, 다신교 신앙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일부 집단은 식민지화 초기까지 장례 의식에서 식인 풍습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선교 마을들은 주로 노예 상인들의 반복적인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원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1618년 예수회는 원주민들이 스페인 국왕의 신하(vassal)가 되도록 제안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또한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지역은 경계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포르투갈과 스페인 왕실 간의 분쟁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이 적용된 것입니다.
선교 마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습니다. 동부 선교 마을은 우루과이 강 동쪽, 즉 오늘날 브라질과 접경한 지역에 있었고, 서부 선교 마을은 현재 아르헨티나에 해당하는 파라나 강과 파라과이 강 유역에 위치했습니다.
전성기에 선교의 일곱 민족 지역에는 약 3만 명이 거주했습니다. 주민은 모두 원주민이었지만, 행정은 스페인 사제들이 담당했습니다.
마드리드 조약
선교 마을의 존속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연이은 영토 분쟁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분쟁은 1680년에 시작되어 1750년 마드리드 조약(Treaty of Madrid)이 체결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조약은 영토 소유 관계를 재정립했는데, 스페인이 선교의 일곱 민족 지역을 포르투갈에 넘기고, 포르투갈은 라플라타 강 어귀에 있는 사크라멘토(Colônia do Sacramento) 식민지를 스페인에 양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과라니 전쟁
원주민들은 조약의 조건에 반대했고 영토를 떠나기를 거부했습니다. 1754년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점령하려 하자, 스페인 군대가 이에 가담해 조약 내용을 무력으로 강제 집행했습니다.
이 과라니 전쟁(Guerra Guaranítica)에서 약 2만 명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산일데폰소 조약
산일데폰소 조약(Treaty of San Ildefonso)은 1777년 10월 1일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체결되어 마드리드 조약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두 나라 간의 사크라멘토 식민지 분쟁이 종식되었습니다. 조약에 따라 스페인은 사크라멘토 식민지와 선교의 일곱 민족 지역을 계속 유지했고, 산타카타리나 섬을 포르투갈에 반환했으며, 라플라타 강 좌안에 대한 포르투갈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선교 마을의 통치 구조는 스페인 도시의 조직 방식을 따랐습니다. 각 마을에는 최고 책임자가 있었고, 시장과 평의원이 있어 이들이 의회를 구성했습니다. 특징적인 점은 모든 직위가 원주민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회가 부과한 사회 조직에서는 사유재산이 없었습니다. 땅을 가꾸는 농기구는 공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종교인들의 지도 아래 원주민들은 농사짓기, 가축 사육, 목각 기술을 익혔습니다. 사회는 직업에 따라 계층으로 나뉘었으며, 예술가들은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습니다.
포르투갈 왕실은 원주민 노예제를 허용한 반면, 스페인 제국은 원주민을 자동적으로 국왕의 신하로 간주했습니다.
선교 마을들은 식민지에 노동력을 공급할 노예를 찾는 개척자들에게 끊임없이 공격받았습니다.
관광
선교의 일곱 민족이 위치했던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도시들은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여행사와 지방정부가 '선교 루트(Rota das Missões)'라 불리는 관광 코스를 운영합니다. 원주민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자연을 감상하며, 고고학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영화 추천
영화 <미션(The Mission)>은 선교의 일곱 민족 영토를 둘러싼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분쟁이 낳은 결과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롤란 조페(Roland Joffé) 감독이 연출한 이 영국 영화는 포르투갈의 노예제를 피해 도망친 원주민들이 영토 분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1986년에 개봉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추천
2013년 브라질 연방상원은 다큐멘터리 <예수회 선교 – 신앙의 전사>를 공개했습니다.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전문가들이 예수회 사제들의 지역 내 활동이 남긴 영향을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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