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밤(Noite das Garrafadas)이란?
병의 밤(Noite das Garrafadas)은 1831년 브라질 제국 시대(1822~1889)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벌어진 반란을 가리킵니다. 이 사건은 페드루 1세(Dom Pedro I)를 지지하는 세력, 대부분 포르투갈인들과, 더 큰 정치적·행정적·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며 정부에 불만을 품은 브라질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었습니다.
황제의 전제주의, 언론 검열, 입헌의회 해산, 1824년 헌법 제정, 그리고 포르투갈 세력의 정치·행정적 영향력 등 여러 요인이 누적된 가운데, 1830년 상파울루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이탈리아 출신 언론인 리베루 바다루(Libero Badaró)가 미스터리하게 암살된 사건이 이 대립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바다루는 '파롤 파울리스타누(Farol Paulistano)'와 '옵세르바도르 콘스티투시오날(Observador Constitucional)' 등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던 신문을 통해 페드루 1세와 제정 정부의 전제주의를 비판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 군주 정권에 맞서기로 결심했고, 이 반란은 페드루 1세의 퇴위 직전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대립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반란의 이름인 '병의 밤'은 양측이 사용한 무기, 즉 유리 조각과 병에서 유래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황제가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을 때 주로 포르투갈인들이 마련한 환영 연회를 기회로 삼아 저항의 신호탄을 올렸습니다.
반란의 배경과 원인
1822년 9월 7일 페드루 1세가 선포한 브라질 독립 이후, 국가는 여러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황제가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점은 국민들의 의혹과 불만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브라질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불만을 산 또 하나의 요인은 페드루 1세가 시스플라티나(Cisplatina) 지역으로 파견한 군대의 패배였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브라질은 우루과이 영토를 잃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1830년 11월 20일, 브라질에 거주하던 이탈리아 출신 언론인 리베루 바다루의 미스터리한 죽음이 겹쳤습니다. 포르투갈의 '재식민지화'를 우려한 이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손잡고 거리로 나섰고, 유리병과 몽둥이를 들고 들뜬 군중과 함께 충돌했습니다. 이 독특한 양상이 반란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반란의 전개 과정
브라질인과 포르투갈인 간의 이 대립은 페드루 1세가 광업 도시 오루프레투(Ouro Preto) 방문에서 돌아와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직후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의 낮은 인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광부들은 적대적으로 그를 맞이했고 정치인들은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검은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단 하룻밤의 사건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 대립은 1831년 3월 11일부터 15일까지 이어졌으며,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831년 4월 7일, 페드루 1세는 퇴위하고 왕위를 당시 5세였던 아들 페드루 드 알칸타라, 즉 페드루 2세(Dom Pedro II)에게 넘겼습니다.
섭정 시대와 페드루 2세의 즉위
페드루 2세의 통치 초기에는 어린 황제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대신 국정을 수행할 제국 섭정을 선출해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1841년 15세의 나이로 대관식을 거행했으며, 브라질 제국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군주로서 약 50년간 브라질을 통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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