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오도로 다 폰세카(Deodoro da Fonseca)는 브라질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1889년 공화주의 세력과 함께 일으킨 쿠데타에 참여하여 브라질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브라질은 새로운 정치 체제에 진입하며 '브라질 공화국'이라 불리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공화국 선포 이후 마레샬(원수) 데오도로는 최초의 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국민제헌의회를 구성하며 새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생애
마누엘 데오도로 다 폰세카는 1827년 8월 5일 알라고아스주 빌라 마달레나 드 사마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누엘 멘데스 다 폰세카(1785~1859), 어머니는 로자 마리아 파울리나 다 폰세카(1802~1873)였습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의 형제들 모두 군인 또는 정치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데오도로도 16세에 리우데자네이루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847년까지 포병을 전공했으며, 이후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는 프라이에이라 혁명, 파라과이 전쟁, 몬테비데오 포위전 등 주요 전역에 참전했으며, 육군 내 노예제 반대 운동의 지도자로서 활약했습니다. 1860년 33세의 나이로 마리아나 세실리아 드 수자 메이렐리스와 결혼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군인 활동 외에도 정치 경력을 쌓아 히우그란지두술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892년 8월 23일 호흡기 질환으로 리우데자네이루주 바라 만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데오도로 다 폰세카 정부
데오도로는 1889년 11월 15일 공화주의자들과 군부 인사들과 함께 공화국을 선포하며 새로운 체제인 대통령제 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하는 격변기 속에서 마레샬 데오도로 정부는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을 거듭 겪었습니다.
그는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1891년 11월 23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할 때까지 집권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엔시야멘투라 불리는 주식 투기 붕괴, 극심한 인플레이션, 은행과 기업들의 연쇄 파산 등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권력 집중, 국회 폐쇄, 언론 검열, 권위주의적 통치 등으로 정치적 갈등도 깊어졌습니다.
이후 부통령이었던 군인 플로리아누 페이소토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1891년부터 189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두 사람의 정부를 합쳐 '검의 공화국(República da Espada)'(1889~1894)이라 불리는 시기를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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