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브라질 플랜으로도 알려진 콜로르 플랜(Collor Plan)은 1990년에 시행된 경제 계획으로, 브라질의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습니다.
역사적 배경
1989년, 브라질은 군사 독재 종식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 다당제 선거를 치르며 정치적 열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반면 당시 브라질 경제는 고도의 인플레이션과 장기 침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30년 만에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된 브라질 국민들은 군사 독재로 박탈되었던 정치적 권리를 되찾았다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새 헌법이 공포되고 노동권과 사회권이 헌법에 명문화되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희망과 기대감이 확산되었습니다.
대선 과정에서는 좌파의 룰라 다 실바, 우파의 울리스스 구이마랑이스 등 역사적인 정치 지도자들이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현대적이고 스포츠맨다운 이미지, 그리고 반부패를 내건 젊은 알라고아스 주지사 페르난도 콜로르 지 멜루였습니다.
대외적인 환경도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국영기업 민영화와 재정 지출 축소가 세계적 흐름이었고, 브라질에서도 콜로르 정부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하게 됩니다.
콜로르 플랜의 탄생
콜로르 플랜은 잠정조치 형태로 시행되었습니다. 즉, 국회에서 심의되거나 의원들의 표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콜로르 지 멜루와 그의 선거 팀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이러한 경제 계획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후보는 인플레이션 종식과 경제 회복을 약속했지만, 그 방법은 부패 척결과 무능한 공무원 해임이라고만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 국민들은 취임 직후 시행된 3일간의 은행 휴업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1990년 3월 16일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이 직접 경제 계획을 발표하면서 닥쳐왔습니다.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이 경제부 장관 취임일에 제리아 카르도주 지 멜루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콜로르는 상파울루대학교(USP) 교수였던 제리아 카르도주 지 멜루를 경제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녀는 정치 경력은 없었지만 1980년대 재무부 자문을 역임한 경험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당시 알라고아스 주지사였던 콜로르를 만나 선거 운동 초반부터 함께 일해 왔습니다.
경제부는 기획부와 재정부를 통합하고 연방세무서 등 여러 사무국까지 포괄하는 막강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제리아 카르도주는 정부 내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장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콜로르 플랜의 주요 조치
- 5만 크루제이루(현재 가치로 약 5,000~8,000 헤알)를 초과하는 예금 동결
- 물가를 3월 12일 수준으로 되돌리는 가격 통제
- 화폐 개혁: 누에보 크루사두에서 크루제이루로 전환(자릿수 조정 없음)
- 국영기업 민영화 추진
- 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폐쇄를 포함한 행정 개혁
- 공무원 감원
- 정부 보조금 폐지를 통한 브라질 시장의 대외 개방
- 정부 관리하의 환율 변동 제도 운영
'예금 몰수' 논란
콜로르 플랜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조치는 바로 예금 동결이었습니다. 5만 크루제이루를 초과하는 예금 보유 계좌의 자금이 정부에 의해 동결되면서, 국민들은 이를 빠르게 '몰수'라고 불렀습니다.
정부는 해당 금액을 초과하는 예금을 동결한 뒤, 18개월 안에 물가상승분과 연 6%의 이자를 더해 돌려줄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경제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제리아 카르도주 장관은 브라질 예금 계좌의 90%가 이 금액 미만이므로 이번 조치가 국민 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정부가 반드시 약속된 기간 내에 예금을 반환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고, 수많은 예금주들이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 법정에 나서야 했습니다.

BANERJ 은행 앞에서 출금을 위해 길게 줄을 선 고객들.
콜로르 플랜 2
콜로르 플랜 1호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첫 달에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몇 주 동안 물가는 계속 상승했고 임금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이에 1991년 2월 1일 발표된 잠정조치를 통해 대통령은 '콜로르 플랜 2'로 알려지게 될 추가 경제 규범들을 도입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우편, 전력, 철도 운송 등 공공 요금 인상
- 오버나이트(overnight) 금융상품 폐지 및 금융투자기금(FAF) 신설
- 참고금리(TR) 제도 도입
결과와 영향
콜로르 플랜 1호와 2호 모두 브라질 경제를 살리거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신용이 비싸지고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브라질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하며, 다른 학자들은 극심한 불황에 불과했다고 평가합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소상공인과 투자자들이 파산했으며, 극단적 선택이나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 비극도 발생했습니다.
이후 실업률이 크게 상승했고, 국내 산업은 낙후되었으며, 일부 국영기업은 시장가격 이하로 매각되었습니다.
상파울루에서만 1990년 상반기에 17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GDP(국내총생산)는 1989년 4,530억 달러에서 1990년 4,330억 달러로 감소했습니다. 아울러 철도 시스템이 붕괴하고 연방 정부의 인프라 투자도 대폭 삭감되었습니다.
더욱이 콜로르 지 멜루는 친동생 페드루 콜로르 지 멜루에 의해 부패 혐의로 고발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지만, 탄핵 절차가 본격화되기 전인 1992년 12월 29일 콜로르는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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